[스페셜2]
[인터뷰] 감정과 기술 사이, <파과> 배우 이혜영
2025-03-06
글·사진 : 김소미

“평생의 일에서 손을 놓아야 할 때” (이혜영)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노쇠한 몸에 신음하는 64살의 킬러 조각(이혜영)에겐 여전한 사명과 과거의 추억이 생의 연료로써 은밀히 작동 중이다. 배우 이혜영은 <파과>에서 단순히 베테랑 킬러의 ‘멋’을 옮기는 존재가 아니다. 은막의 스타로서 아우라를 간직한 이 배우는 겉보기에 시든 삶에 깃들어 있는 복잡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동안 육체적으로는 부상을 입고, 정서적으로는 동시대가 고전적 의미로서 배우에 부과하는 위기감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가 하명중 감독의 <땡볕> 이후 약 40년 만에 <파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파과>가 남긴 탈색한 금빛 머리로 베를린에 등장한 이혜영에게서 문득 이 도시가 그토록 사랑한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영광이 비쳤다.

- 액션 누아르의 몸 안에 멜로드라마의 정서를 강하게 품은 영화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어떤 점이 와닿았나.

감정의 결이 굉장히 응축된 작품이었다. 특히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감독이 나를 캐스팅한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내가, 그것도 민규동 감독의 액션영화에 출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민 감독은 우아하게 말하면 내 얼굴의 시간성, 그러니까 보톡스를 맞지 않아서 좋다고 하더라. (웃음) 세월감이 있고 우울한 얼굴을 원한다고 했다. 조각은 단순히 강인한 여성이 아니다. 살아온 시간과 생존의 이유가 너무나 깊고 복잡한 캐릭터여서 어쩌면 그게 나를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 <피도 눈물도 없이>(2001) 이후 스크린에서 처음 만나는 이혜영의 액션이다. 최근엔 주로 홍상수 감독 영화의 페르소나로 기억됐다. 민규동 감독과 함께한 이번 작업에서 새로운 점이 있다면.

연기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최근엔 주로 홍상수 감독과 작업을 많이 해왔고 그 방식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현장에서 받은 상황을 즉흥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니까 선입견도 없고 준비할 것도 없었다. 또 드라마 현장에선 어느 정도 배우가 원하는 동선과 움직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모든 게 달랐다. 철저한 콘티뉴이티를 지켜야 했다. 구체적인 동선, 지속 시간, 감정을 표출할 타이밍까지 정해져 있었으니까. 처음엔 인형이 된 것 같았다. 민규동 감독은 모든 컷을 세심히 조율해놓고 진행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자유롭게 감정을 쌓아갈 틈을 확보하겠다고 감독님과 줄다리기하는 시간도 있었다. 촬영을 거듭하면서 결국 많이 배웠다. 연기가 기술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이제야 짜릿하게 경험한 것 같다.

- 편집점과 스턴트의 개입을 고려해 철저히 콘티뉴이티에 응답하는 방식의 연기를 했다. 진실성과 테크닉 사이에서 배우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정말이지 이런 연기는 이전에 해본 적 없다. 상대 없이 설정된 동선을 혼자 따라가야 하는 순간들, 무언가 ‘날아온다, 찌른다’ 하는 식의 반응을 상상하면서 액팅해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했다. 이런 세팅 속에서 감정을 얼마나 진실하게 살릴 수 있을지 고민도 깊어졌다. 연기의 본질은 결국 신뢰를 주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게 진짜여야 한다. 작품 속에서 배우가 죽을 때 잠시나마 진짜 죽는 것이다. 요새는 AI의 시대니까 인간이 연기하지 않아도 관객이 감동받는 순간은 허다하다. 이런 시대에 나 같은 배우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왜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를 연기한 이언 매켈런이 그린스크린으로 가득찬 방에서 다 같이 식사하는 신을 혼자 연기하다가 문득 눈물 흘리는 모습이 공개된 적 있지 않나. 그 외로움과 고충을 이제야 진정으로 알겠더라고. (웃음)

- 푸석한 은발, 언뜻 누추하지만 갖춰 입은 의상이 조각이 살아온 인생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 부분도 참 많이 고민했다. 세련된 킬러로 갈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모습으로 갈 것인가. 어디까지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며, 어디까지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정작 촬영에 들어간 뒤로는 내 나이와 몸에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겠다고 봤다. 다만 머리색을 유지하는 건 어려웠다. 흑발 위로 그레이 컬러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아서 탈색을 여러 번 반복했고, 머리를 몇 번 감으면 바로 색이 변해서 그때마다 새로 염색했다. 그 위에 매번 분장팀과 함께 새롭게 컬러를 입힌 것이다. 마지막엔 머리가 다 끊어질 정도였다. <파과> 이후로 지금까지도 탈색한 금발을 유지하고 있는데, 올해 곧 <헤다 가블러> 연극을 앞두고 있으니 좀더 유지해볼 참이다.

- 하명중 감독의 영화 <땡볕>(1984)으로 베를린을 찾은 지 40년 만인데 소회가 어떤가.

그때는 베를린장벽도 있었고,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춥고 먼 나라였지. 한국영화가 해외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갈라 행사에서 조용원 배우와 함께 <춘향전> 춤을 췄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럽에서 한국을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일조한 것 같아 민망한 기분도 든다. 유럽 관객은 <땡볕>이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 놀라고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그 시절 한국영화들이 그렇지 않았나. 어쨌든 나 자신도 해외 영화제 경험이 부족했고 모든 것이 낯설었다. 용원이랑 베를린 거리를 쏘다니면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장벽 위에 올라가서 포즈를 취하려다가 감독님께 크게 혼나기도 하고, 그러다 한번은 클럽에 들어갔는데, 그때 베를린이 유행의 첨단을 걷는 도시라는 걸 어린 나이지만 확실히 알겠더라. 하나도 친절하지 않은, 그 비타협적인 세팅에서 유행을 앞서가는 호기를 느꼈다고 해야 할까. (웃음) 다시 돌아온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그 분위기는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최전선에 다시 도착해서 달라진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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