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잠자는 걸작 10편, 깨워라! [9] - 아들
2003-03-2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아들>(Le Fils)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소년이 묻는다. “올리비에라고 불러도 돼요?” 흠칫 놀란 남자가 되받아친다. “왜지?” “다른 애들도 모두 그렇게 부르니까요.” 이 아이 프랜시스, 재목 하나 가뿐히 들지 못하는 이 왜소한 열여섯 소년은 아직 모른다. 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프랜시스는 5년 전 올리비에의 다섯살 난 아들을 살해했다. 사람을 잊는 일은 사람을 기억하는 일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어서, 아내마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올리비에는 아직도 단 한번 웃지를 못한다. 그런 올리비에에게, 아들의 살인자는 이름을 불러도 괜찮은지, 보호자가 돼줄 수 있는지, 천진하게 부탁한다. 얼마나 참혹한 심정일까. 그러나 올리비에는 무심히 대답한다. “네가 원한다면….” 하얀 빛으로 가득 찬 두꺼운 안경 렌즈에 가려, 올리비에의 눈동자는 어떤 표정을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 <아들>은 실화를 단서 삼아 시작됐다. 벨기에의 형제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장 뤽 다르덴은 리버풀에 사는 두 소년이 어린아이를 유괴해 살해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아이가 아이를 죽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사건은 부모와 사회에 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오래 전 주연자리를 약속했던 목수 출신 조연배우 올리비에 구메를 찾아가 그 등 뒤에서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었다. 격정의 순간보다 한 호흡 늦게, 표정보다 몸짓이 담긴 감정에 충실하면서, 다르덴 형제의 핸드헬드는 진한 고통에 잠긴 한 남자를 쫓아 발걸음을 떼놓는다. 올리비에는 청소년재활센터에서 목공일을 가르친다. 그의 아들을 죽인 프랜시스가 소년원에서 출감해 센터를 찾아오던 날, 재혼을 앞둔 아내는 그에게 아이를 가졌다고 웃으며 말한다. 한참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남몰래 프랜시스를 탐색하던 올리비에는 마침내 소년을 받아들인다. 수상한 며칠이 지난 뒤, 올리비에는 멀리 떨어진 숲 속 제재소로 프랜시스를 이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올리비에의 얼굴에는 차가운 살의가 스치기도 하지만, 그는 아직 아버지의 자리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는 살인을 되풀이할 수 없을 것이다.

평론가 짐 호버먼이 고백한 것처럼, <아들>은 처음보다 두 번째 볼 때 미세한 아픔으로 고동치는 상처자국을 더 자주 포착할 수 있는 영화다. 전처의 임신소식을 들은 올리비에는 속눈썹을 빠르게 깜빡인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행동으로 한번 터지면 다신 막을 수 없을 눈물에 방벽을 친다. 프랜시스는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말하라는 올리비에에게 “뒷자리에 가서 잘래요”라고 말한다. 잠을 자면 왜 열한살 때부터 지금껏 소년원에 갇혀 있었는지,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어쩌면 올리비에가 프랜시스 몸 위에 올라앉아, 그의 아들이 그렇게 죽었던 것처럼 목을 조르는 순간은 이 영화의 절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던 5년의 세월과 함께 그 이전과 이후의 삶마저 송두리째 잃어버린 올리비에. 그는 한꺼번에 찾아와 상실을 일깨우는 사건들을 맞아 아내처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고, <아들>은 그 진정한 시작으로 향하는 영화다. 삶은 매순간이 결정적이다. <아들> 역시 한순간 한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따라붙으면서 어느 한 부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느껴지는가.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아들>의 리뷰에서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 이전에 진실을 목격해야 한다”고 썼다. 진정 치유를 돕는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찾아낸 것일 테고, 그 시간은 마땅한 가치가 있다. 프랜시스가 소년원에서 보낸 5년이 실수로 저지른 살인을 후회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처럼.

다르덴 형제는 “아버지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은 <아들>”이라고 말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지만, <로드 투 퍼디션>에서 마이클 설리반은 함께 지옥에 떨어질 보스에게 “내 아들만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올리비에는 프랜시스에게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건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유산이다. 마이클처럼, 올리비에도 살인의 흔적이 그 유산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아들>은 이처럼 삶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식으로 삶을 인도하는 영화다. 억지부리지 않고, 참을성 있게.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면, 그건 <아들>과 같은 카운셀러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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