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잠자는 걸작 10편, 깨워라! [1] - 임소요
2003-03-21
글 : 정성일 (영화평론가)

개봉촉구! <임소요>에서 <아들>까지, 반드시 ‘극장에서’ 만나고 싶은 걸작 10편 지지선언

수입은 해놓고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이 있다. 때로는 걸 만한 극장을 찾을 수 없어서, 때로는 수입사 스스로 흥행 가능성에 자신이 없어서, 때로는 심의문제가 걸려서. 영화사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이런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외국의 각종 매체에서 그해 베스트 10에 꼽힌 작품들이다.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경탄을 자아내고 열렬한 지지를 받은 영화들을 하루빨리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씨네21>의 이번 특집은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임소요> <큐어> <해피니스> <팜므파탈>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아들> <막달렌 시스터즈> <볼링 포 콜럼바인> <노 맨스 랜드> 등 10편에 대한 추천사를 모은 이번 특집이 관객의 조바심을 재촉해 정식 개봉의 그날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임소요>

마음을 얻고 나는 쓰네

2000년 중국. 그러니까 이제 막 21세기에 들어선 중국의 변경 도시 따퉁에는 시골집에서 가출해서 지금 막 상경한 두 소년이 있었다. 그들은 도시에 가면 금방 취직이 되고, 돈을 벌어서 금의환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처럼 모든 것이 잘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춥고 배고프게 지내야만 했다. 도시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이제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남은 돈이 없었다. 두 소년은 국수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베이징 근처의 석가장에서 폭파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려주었다. 범인인 실직한 노동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집을 폭발시켜 버린 것이다. 그때 한 소년이 다른 소년에게 말했다. 우리 폭탄을 들고 은행에 들어가서 그 은행을 털든지 아니면 폭발시켜 버리자. 그 소년들은 은행 강도가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사제폭탄을 만들었다. 그리고 비장해진 두 소년은 그들이 빌려다 본 불법 복사 홍콩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고향에 계신 부모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한 소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라디오에서 (대만 가수가 부른) 유행가 <임소요>(任逍遙)가 흘러나왔다.

…어떤 후회나 슬픔이 와도 사랑만 있다면 상관이 없다네.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이 있다 해도 나는 바람처럼 자유롭지. 내가 만일 영웅이라면 당신은 내 출생의 미천함을 물어보지 마시오. 높은 야망으로 내 가슴은,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지. 그러나 사랑만은 잊을 수 없네. 평생 동안 간직했으나 이룰 수 없었지. 영웅은 초라한 태생을 두려워하지 않지. 내 마음은 야망과 자존심으로 가득 차 있네. 그러나 내가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랑. 평생 동안 헛되이 간직해왔건만 사랑에 빠져 나는 눈멀었네, 애증이 가슴에 가득 하구려. 운명은 진정한 사랑을 갈라놓으니, 내 어찌 당신을 잊으리오….

열아홉살 소년은 그 가사를 베껴 써서 그의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것이 그가 보낸 마지막 고향 편지가 되었다. 두 소년은 은행을 털러 들어갔다가 미숙하게 폭탄을 만지는 바람에 그만 폭발하였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신문은 이 사건을 사회면의 작은 난에 실었다. 그리고 그걸 지아장커는 읽었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이걸 읽으면서 망연자실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곡을 찾아서 다시 한번 들어보았다. 그리고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따퉁을 찾아갔다. 그는 매일 출근하듯이 아침 6시에 따퉁에 도착해서 저녁 9시까지 따퉁의 여기저기를 찍었다. 거기서 두 소년과 같은 수많은 19살을 만났다. 그렇게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의 시나리오는 거리에서 쓰여진 것이다. 그는 유릭와이가 촬영하는 디지털카메라의 도움으로 따퉁의 거리에서 19일 만에 촬영을 끝냈고, 편집을 비밀리에 끝냈다.

칸에서 이 영화의 공식상영은 2002년 5월23일 오후 4시에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그 자리에 있던 관객은 기꺼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지아장커는 그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여섯달 뒤에 나는 부산에서 물어보았다. 칸에 온 것이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습니까? 지아장커는 대답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운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 아이들이 버림받고, 죽어가고, 묻혀질 때, 아무도 그 아이들을 기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일깨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가 지구 반대편에 와서, 그 아이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만들 때, 나는 그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너희들은 잊혀진 것이 아니야. 너희들의 분노, 너희들의 슬픔, 너희들의 고통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나는 그렇게 자꾸만, 자꾸만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지아장커의 <임소요>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이다. 그는 더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소연하듯이 만든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이 사무친다. 나에게 영화에서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진심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안고, 절실하게, 정말 소망할 때, 그 영화는 내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영화관에 가서 시시하게 팝콘이나 처먹고 콜라나 마시면서, 거기서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지아장커의 <임소요>를 보기 위해서라면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그 영화를 보고, 그 마음에 응원을 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영화를 사랑한다.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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