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잠자는 걸작 10편, 깨워라! [8] - 막달렌 시스터즈
2003-03-21
글 : 김혜리

<막달렌 시스터즈>(The Magdalene Sisters)

주여,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사람들은 괴담을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 제도화된 사디즘의 포로가 되어 고생한 기억이 있다. 그것은 많은 경우 학교나 군대와 관계되고, 더러는 가족과 관련되기도 한다. 선택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이 피학의 경험들은 각별히 끔찍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집이 있는 숲을 되돌아보는 듯한 말투로 진저리치게 만든다.

피터 멀랜 감독의 <막달렌 시스터즈>는 그처럼 널리 퍼져 있는 악몽의 선정적인 원형을 관객의 면전에 똑바로 내던진다. <막달렌 시스터즈>가 고발하는 ‘감옥’은 가톨릭 교회다. 그래서 지난해 가톨릭 국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화제와 후유증을 낳았다. 1960년대 아일랜드에는 ‘막달렌 세탁소’라고 불리는, 교회가 후원하는 수용시설이 있었다. 모든 죄지은 여성의 어머니인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딴 이 기관은 타락했거나 타락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자들을 임의로 감금하고 1년 365일 안식일도 없이 세탁공장 노동자로 혹사했다. 군대나 학교에 있는 시한도 이곳에는 없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같은 날 막달렌에 입소한 세명의 10대 소녀다. 마가렛은 가족의 결혼식날 사촌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발설했다. 로즈는 결혼하지 않은 채 아기를 낳았다. 고아원에서 자란 버나뎃은 남다른 미모가 동네 남자애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녀들의 ‘유괴’와 ‘납치’는 아버지의 묵인과 교구 신부들의 주도 아래 매우 조용히 실행된다. 작은 몸피에 맹금류의 눈을 가진 원장 수녀는 신입생들에게 갈파한다. 세탁은 지상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영혼의 세척이다. 음식과 잠을 포함한 육신의 쾌락은 배제한다. 불복종은 불관용의 대상이다. 처음 얼마간 마가렛은 착오라고 믿고 버나뎃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로즈는 슬픔에 말을 잃는다. 그러나 탈출한 동료가 친아버지의 손에 개처럼 도로 끌려온 날 밤, 절망은 단단해진다. 모든 인간과 사물이 직각으로 배치된 하얀 ‘감옥’에서 어린 세탁부들은 낡은 시트처럼 닳아간다. 타락한 성직자들의 돈 버는 노예로 착취당하고 성욕의 하수구가 된다.

가공스러운 것은 폭력의 강도가 아니다. 그것의 천연스러움, 신앙과 폭력의 감쪽같은 공존이다.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새>의 수간호사 루이스 플래처의 닮은꼴인 원장 수녀는 살을 에는 회초리질 도중에 태연히 신의 자비를 입에 올린다. 다른 수녀들은 심심풀이로 소녀들을 벗기고 누구의 젖가슴이 제일 크고 누구의 음모가 제일 무성한지 즐거이 품평한다. 저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저들은 알지 못한다. 영화의 고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최후의 막달렌 세탁소는 1996년에야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지금도 세상에는 강압과 폭력이 ‘사람 만든다’고 믿는 생각들이 존재한다.

<막달렌 시스터즈>는 가난하고 투박한 분노가 만든 영화다. 피터 멀랜 감독에게는 더 세게 보이려는, 혹은 더 세련된 사색의 결과로 보이려는 메이크업도 전략도 없다. 악역인 수녀들의 인간적 면모를 살피는 배려도 배우의 눈빛에만 맡기고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완곡어법 따위는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말하듯. 그래서 이 영화는 벌거벗겨진 소녀들의 상처난 몸처럼 미숙하지만 오래도록 잊기 힘들다. 함께 화가 치밀어 영화를 보는 동안은 피가 식고 오금이 저리고 차가운 물에 잠긴 빨래의 시큼한 비린내가 코끝에 감돈다. 마침내 버나뎃과 로즈가 수녀들을 공격하는 마지막 어설픈 액션은, 슈퍼히어로영화의 피날레처럼 원초적 카타르시스를 자극한다. 소녀들이 문을 부술 때 베니스영화제에서는 관객의 환호가 극장 바깥까지 흘러넘쳤다.

좀 병적인 연상이지만, <막달렌 시스터즈>가 들려주는 ‘분노의 음향’은- 그리고 수용소를 둘러싼 거짓말같이 아름다운 잔디 언덕도- 줄리 앤드루스가 마리아 수녀로 나오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생각나게 한다(<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3년에 개봉됐고, 극중에서 로즈, 버나뎃, 마가렛이 막달렌 세탁소로 끌려간 것은 1964년이다). 환상과 선동. 감정을 ‘조작’하는, 영화의 위대한 술책 두 가지가 난처한 지점에서 등을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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