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1]
2004-02-06
글 : 권은주
사진 : 오계옥
김인식 <얼굴없는 미녀>

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시대를 맞았지만 국내에서 1년에 제작하는 영화 편수는 지난 10여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흥행작이 많았고 <실미도>가 <친구>의 흥행기록을 깰 것으로 보이는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입장에선 새 영화를 준비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힘들다.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준비과정에 들어간 감독의 땀과 정성은 정작 촬영을 시작한 뒤보다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산고’라는 표현이 과장된 게 아니다. 여기 소개하는 영화 10편은 그런 통증을 통해 이제 막 나오려는 신생아들이다. 더러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는 재기작이기도 하고 일부는 신인감독의 패기만만한 데뷔작이기도 하며 또 어떤 영화는 데뷔작의 성공으로 인한 부담감과 싸워야 할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일 올해의 신작 10편, 각각 감독의 말을 통해 이들 영화의 전모를 들여다보자.

“호러, 아닙니다. 심리드라마입니다.” 김인식 감독은 확실히 해두고 싶어했다. <얼굴 없는 미녀>라는 제목만 보고 목이 없는 귀신이 출몰하는 호러영화인지를 묻는 이들을 숱하게 만난 까닭이다. 이상하게도 시나리오 작업만을 염두에 두고 ‘얼굴 없는 미녀’라는 아이템을 골라잡았을 때부터 그는 어떤 형태로든 호러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여인의 고통이 떠올랐다. 리얼리즘영화 <로드무비> 직후 색다른 도전을 원했던 김인식 감독에게 ‘관계’에 관한 ‘판타지’ 또는 ‘퍼즐 게임’은 매력적인 키워드가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어차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많은 경우 관계가 형성되면서 남을 상처주고 파괴하기도 한다. 인간은 강인한 것 같으면서도, 유리처럼 연약한 존재다. 그 얘길 하고 싶다.” <얼굴 없는 미녀>는 환각과 기억상실을 수반한 경계성 장애를 앓는 새내기 주부 지수와 정신과 전문의 석원이 훗날 다시 만나 위험한 관계에 빠져드는 과정을 따라잡는다. 이들의 관계가 전이되고 경계를 넘는 과정뿐 아니라 각자 맺고 있는 다른 관계들이 뒤섞여 종국에는 하나로 만나는 원형구조의 이야기. 비슷한 장면이 인물과 상황만 바뀐 채 여러 번 변주되며, 힌트와 교란이 반복되는 모호한 화법을 취하게도 된다. 그렇지만 미스터리 구조로 가지는 않을 예정. “음모, 선과 악의 대비를 싫어한다”는 김인식 감독은 관객에게 많은 걸 ‘오픈’하고 가려 한다. 의문을 던지지만 바로 풀어주고,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의문은 서서히 증폭시키겠다는 계획. 이런 과정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가지고 놀고 싶다”는 것이 그의 욕심이다.

작품을 따라다닌 가장 큰 화제는 바로 김혜수의 캐스팅. 김인식 감독은 기존의 건강하거나 섹시한 것과는 다른 이미지와 연기를 이끌어낼 요량이고, 세간의 관심인 노출 수위에 대해서는 “기대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정신적 황폐함에 대한 보상이고, 그래서 더 슬퍼 보여야 하는 만큼” 메이크업과 의상에도 김혜수 본인과 스탭들이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고, 그렇게 “선택의 여지가 많아 행복하다”는 것이 이즈음의 솔직한 심경이다. 저예산영화답지 않은 “때깔”을 선보였던 <로드무비>로도 알 수 있듯이, 김인식 감독은 “새로운 비주얼”을 선보이는 것을 “감독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 김우형과 조명 임재영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얻은 <얼굴 없는 미녀>의 영상은 “국민 소득 3만달러 시대를 가정한, 일종의 근미래 컨셉”이다. <블루>의 장식적이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비주얼을 참고하고 있는데, 컷 수도 많을 것이고, 필터와 렌즈도 과감하게 쓸 예정이라고. 시도해 보고픈 수많은 샘플 속에서 균형을 잡느라 애를 먹고 있다는 김인식 감독은 지난 1월27일 <얼굴 없는 미녀>의 첫 큐사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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