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시대를 맞았지만 국내에서 1년에 제작하는 영화 편수는 지난 10여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흥행작이 많았고 <실미도>가 <친구>의 흥행기록을 깰 것으로 보이는 지금도 이는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화를 제작하고 연출하는 입장에선 새 영화를 준비하는 게 예나 지금이나 힘들다.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를 캐스팅하는 준비과정에 들어간 감독의 땀과 정성은 정작 촬영을 시작한 뒤보다 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산고’라는 표현이 과장된 게 아니다. 여기 소개하는 영화 10편은 그런 통증을 통해 이제 막 나오려는 신생아들이다. 더러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는 재기작이기도 하고 일부는 신인감독의 패기만만한 데뷔작이기도 하며 또 어떤 영화는 데뷔작의 성공으로 인한 부담감과 싸워야 할 작품이다.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일 올해의 신작 10편, 각각 감독의 말을 통해 이들 영화의 전모를 들여다보자.
“호러, 아닙니다. 심리드라마입니다.” 김인식 감독은 확실히 해두고 싶어했다. <얼굴 없는 미녀>라는 제목만 보고 목이 없는 귀신이 출몰하는 호러영화인지를 묻는 이들을 숱하게 만난 까닭이다. 이상하게도 시나리오 작업만을 염두에 두고 ‘얼굴 없는 미녀’라는 아이템을 골라잡았을 때부터 그는 어떤 형태로든 호러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대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여인의 고통이 떠올랐다. 리얼리즘영화 <로드무비> 직후 색다른 도전을 원했던 김인식 감독에게 ‘관계’에 관한 ‘판타지’ 또는 ‘퍼즐 게임’은 매력적인 키워드가 아닐 수 없었다.
작품을 따라다닌 가장 큰 화제는 바로 김혜수의 캐스팅. 김인식 감독은 기존의 건강하거나 섹시한 것과는 다른 이미지와 연기를 이끌어낼 요량이고, 세간의 관심인 노출 수위에 대해서는 “기대 이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정신적 황폐함에 대한 보상이고, 그래서 더 슬퍼 보여야 하는 만큼” 메이크업과 의상에도 김혜수 본인과 스탭들이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고, 그렇게 “선택의 여지가 많아 행복하다”는 것이 이즈음의 솔직한 심경이다. 저예산영화답지 않은 “때깔”을 선보였던 <로드무비>로도 알 수 있듯이, 김인식 감독은 “새로운 비주얼”을 선보이는 것을 “감독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 김우형과 조명 임재영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얻은 <얼굴 없는 미녀>의 영상은 “국민 소득 3만달러 시대를 가정한, 일종의 근미래 컨셉”이다. <블루>의 장식적이고 콘트라스트가 강한 비주얼을 참고하고 있는데, 컷 수도 많을 것이고, 필터와 렌즈도 과감하게 쓸 예정이라고. 시도해 보고픈 수많은 샘플 속에서 균형을 잡느라 애를 먹고 있다는 김인식 감독은 지난 1월27일 <얼굴 없는 미녀>의 첫 큐사인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