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인터뷰>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변혁 감독의 신작은 <주홍글씨>다. <주홍글씨> 하면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이 우선 떠오르지만 이 영화는 호손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은 아니다. 엉뚱하게도 변혁의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은 김영하의 단편소설들이다. <사진관 살인사건> <바람이 분다> <거울에 대한 명상> 등 단편소설 세 작품에서 이야기와 캐릭터와 설정을 빌려 만들 예정. 이들 세편 소설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모두 불륜을 다루고 있으며 낭만적 상상 뒤에 숨어 있는 시커먼 욕망과 구차한 현실을 냉정히 고발하는 작품이다.
일단 외양은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틀을 빌려왔지만 <주홍글씨>는 데뷔작 <인터뷰>에서 연결되는 변혁 감독의 관심이 뚜렷이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각자의 입장에서 전혀 다른 드라마가 전개되는, 시점의 차이가 중요한 영화”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만든 다음 프랑스에 가서 ‘영화에서 시점의 차이가 갖는 의미’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을 정도로 그에겐 시점의 문제가 영화적 화두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영화가 될 것 같진 않다. 그는 <인터뷰>의 실패를 “상업적 목표가 분명치 않았던 데 있다”며 “상업적 목표에 철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에로틱 미스터리의 장르적 재미를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변혁 감독은 김영하의 소설과 달리 칙칙한 느낌이 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삼류인생의 감성이 묻어나는 원작과 달리 화사하고 부유하며 아무 결핍도 없을 듯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치정극을 그리겠다는 것.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요즘 한국영화를 보면 웰메이드는 기본인 것 같다”며 웰메이드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담아보겠다는 영화적 포부를 슬쩍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