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4 한국영화 야심만만 프로젝트 10 [10]
2004-02-06
글 : 심지현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김태경 <령>

김태경 감독은 <령> 이전에 <최면>이라는 단편을 찍었다. <령>의 오프닝신은 <최면>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기억을 소재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이번이 두 번째다. 비슷해 보이는 두 작품 중 이미 완성된 <최면>은 호평을 받았다. 신인 감독의 호러물 도전에 지원의 손길을 뻗은 대부분은 <최면>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최면술사를 찾아간 주인공이 현재에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영화는, 역순으로 배치된 사건들로 하여금 현재의 구성요소가 과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전달한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령>에는 기억이라는 소재 외에도 빙의라는 초자연 현상을 개입시켜 “내가 나인가?” 하는 질문을 완성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기억 찾기를 포기한 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 날인가 잊혀진 과거로부터 불온한 호출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존재 자체를 뒤흔들 만한 과거라면, 기억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버스 안에 놓고 내린 우산처럼 새로운 기억들로 대체하는 게 나을까.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기억과 영혼이라는 키워드를 모두 분실한 주인공이 흔들리는 모습은 마치 우리의 시대상과도 닮아 있다. 감독은 자료 수집 초기 주로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논문들에 심취했다. 무서운 건 다름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조국의 역사는 참혹했다. 과거사의 갈피마다 새로운 혼령이 조국의 몸을 지배했고, 조국에 몸을 뺏긴 망령들은 개인의 역사를 유린했다. 유린된 몸은 영혼과 이별할 때마다 이름을 잊어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살아 있는가, 죽었는가. 우리 조국의 이름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감독의 고민 탓인지, 영화 속 인물들의 역사 위에는 시대의 아픈 역사가 한데 겹쳐 어른거린다. 부정입학으로 대학생이 된 은서, 왕따 만들기에 심취한 유정, 취업 고민에 빠진 준호, 술집을 점령한 학생들의 모습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작품 안에 시대상을 녹여보겠노라고 생각한 데는 감독의 색다른 체험이 있었다. 호러물을 써보겠다고 이곳 저곳을 들쑤시던 그는 어느 날 인디 밴드의 공연장을 찾았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 간단한 동영상이 틀어지고 조그만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화면에는 일제시대 순사가 단속을 나온 장면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곤 바로 시작된 밴드의 노래. 이상한 일이었다. 그 당시엔 무섭다거나 음산하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등골이 쩍 솟아올랐다. 어린 시절 아무렇지 않게 불렀던 동요가 실은 순사를 피하라는 소리였다니. 곧바로 작품의 모티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시나리오는 읽는 사람마다 “두 번째 읽을 때가 더 무섭다”라는 평을 얻었다. 무거운 대??? 사회적 메시지는 안으로 숨기고,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은 그저 개개인의 에피소드만 충실히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 영화를 관람하고 집에 돌아간 뒤 다시 한번 오싹해지는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령>의 개봉일은 6월18일로 잠정 결정됐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대생과 그녀를 둘러싼 의문의 죽음이 장르법칙에 따라 충실하게 수놓인 영화 <령>은 관객에게 ‘이제 잠들지 말라’고 주문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누나의 손을 잡고 본 <나이트 메어>의 공포를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고스란히 담았다고 자부한다. 정신을 차릴 것. 그렇지 않으면 찾아온 혼령이 너희의 육신을 빼앗고, 너희의 땅을 휘저어놓을 것이니. 잠들지 말 것. 깨어 있을 것. 그리고 내가 정말 난지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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