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봄이 오면>의 신인 류장하 감독은 영화 <파이란>을 볼 때마다 차마 견디지 못해 지나치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중병을 얻은 파이란이 월급을 떼어가는 사내에게 자비를 구하다 거절당하는 대목이고, 또 하나는 강재가 기어이 목 졸려 숨지는 순간이다. <봄날은 간다>의 조감독으로 각본에 참여했던 그가 쓴 초벌 시나리오에서, 상우와 은수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의 눈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류장하 감독 버전의 <봄날은 간다> 초안에서는 소리를 채집하러 떠난 상우가, 그의 부재를 모르고 찾아온 은수의 전화를 받는 데에서 영화의 시계가 멈춘다. 말하자면 류장하 감독은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그려 보이는 입봉작 <꽃 피는 봄이 오면>도 얼마쯤 닮은 영화다. 봄날은 언젠가 간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끝내 “그리고는, 다시 온다”고 들릴락 말락 덧붙이는.
서른이 되어서야 입학한 영화아카데미를 1996년 졸업한 뒤에도 <산부인과> <봄날은 간다> 조감독을 거치며 8년을 소요한 충무로 수업을 류 감독은 할 수 있는 영화를 발견하는 기간이었다고 말한다. “관객을 설득하려는 다부진 기획이 들어앉아 있는 영화보다 ‘텅 빈’ 영화가 맞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많은 관객이 그런 영화를 찾는 모습을 보며 믿음을 굳혔다.”
헤어진 연인과 재회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겠다고 궁리 중이던 류창하 감독에게 <꽃 피는 봄이 오면>의 제작사가 접촉해온 것은 2001년 가을. 영화사는 사재를 털어 시골 주민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오케스트라를 꾸린 어느 목사, 그리고 <브래스드 오프>를 연상시키는 어느 교사의 이야기를 기록한 TV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제안했다. 그러니까 <꽃 피는 봄이 오면>은 감독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정서와 실화의 구조가 어울려 나온 결과인 셈이다.
<꽃 피는 봄이 오면>을 ‘회복의 이야기’라고 요약하는 류창하 감독은, 플래시백 없이 주인공 현우와 나란히 늦가을에서 봄에 이르는 계절을 종단할 심산이다. 다만 그에게 조그만 계략이 있다면 현우를 둘러싼 사람들이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유성처럼 스쳐가며 희미한 사랑의 온기를 전하게 만든다는 것. 음악의 힘이 절반이라고 감독이 공언하는 만큼 어원에 부합하는 ‘멜로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이는 이 영화의 ‘밴드마스터’는 조성우 음악감독이고 카메라는 <장화, 홍련>의 이모개 기사가 잡는다. 시나리오를 받은 지 열흘 만에 쾌히 수락한 배우 최민식은 아역 오디션에까지 참여해 대사를 상대하는 열정으로 프로덕션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 사랑과 사랑 사이에 조용히 드리워져 있는 간주곡 같은 시간을 그릴 <꽃 피는 봄이 오면>은 2월 말 겨울 끝자락을 잡아 촬영을 시작해 추석에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