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타이틀]
듀나의 DVD 낙서판 <피카딜리>
2005-04-25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DVD라는 매체가 흥미진진한 진짜 이유는 번지르르한 최신작들보다 오히려 영화 개발 초기에 나온 구닥다리 무성영화들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화야 때를 잘 맞추면 그냥 극장에서 봐도 된다. 하지만 운 좋게 무성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 근처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DVD는 루이즈 브룩스나 메리 픽포드와 같은 무성영화 스타들의 고전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다.

지금까지 마일스톤사는 꾸준히 흥미진진한 무성영화의 고전들을 발매해왔다. 어떤 것들은 영화 교과서에서나 간신히 접할 수 있었던 책 속의 고전들이고, 어떤 것들은 오래 전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재발견된 영화들이다.

E. A. 뒤퐁의 <피카딜리>는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몇몇 연구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대 관객들에게 <피카딜리>는 낯선 제목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고전 영화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이름은 한 번 들어봤을 것이고 누군지도 알 것이다. 안나 메이 웡 말이다. 웡은 1929년 영국에서 이 영화를 찍었다. 크레딧에서는 세 번째에야 간신히 이름이 오르지만 당당한 주연이기도 하다.

<피카딜리>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메이벨은 파트너가 떠난 뒤 서서히 인기를 잃어가는 댄서다. 클럽의 주인이자 댄서의 애인인 발렌타인은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중국인 접시닦이 쇼쇼를 스카웃한다. 쇼쇼는 단번에 스타로 떠오르고 메이벨은 쇼쇼가 자신의 스타 위치뿐만 아니라 발렌타인까지 빼앗을까봐 두려워한다. DVD에 수록된 자료에 따르면 이 영화는 쇼 비즈니스계의 뒷이야기를 다룬 뒤퐁의 삼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이야기는 평범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안나 메이 웡이라는 스타의 존재이다. 1929년도 작품이니 <피카딜리>에서 지금의 ‘정치적 공정성’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고정된 스테레오 타입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안나 메이 웡이 발산하는 화려한 스타 이미지와 섹스어필은 놀랍고 신기하며 상당히 자랑스럽다.

마일스톤 DVD의 부록은 다소 건조하지만 알차다. 가장 ‘재미있는’ 미디어 자료는 재발견된 영화의 토키 버전 프롤로그일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국제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의 간담회 자료(화질과 음질은 형편없다)는 안나 메이 웡에 대한 현대 아시아 영화인들의 평가가 어떤지 보여준다. 작정하고 학술적이 되고 싶다면 PC로 디스크를 옮겨 '5 Authors in Search of Anna May Wong'을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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