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타이틀]
듀나의 DVD 낙서판 <핑거스미스>
2005-12-27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19세기 영국 배경의 레즈비언 드라마

BBC 미니 시리즈 <핑거스미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이름은 원작자인 사라 워터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게이-레즈비언 독자들 사이에서만 컬트 작가 취급을 받았던 사람이 순식간에 서머셋 모옴상을 수상하고 부커상 후보에도 오르는 거물이 되었으니 본인이나 초반부터 따랐던 열성팬들도 흐뭇할 일이다. 다른 일반 독자들에게도 특별히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니, 19세기 영국을 무대로 한 워터스의 소설들은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은 정확하고 정보는 풍부하고 놀랄 만큼 섹시한데다 19세기 대중작가들의 뻔뻔스러운 재미가 넘쳐흐른다.

내년 2월에 출판될 40년대를 무대로 한 신작 <The Night Watch>를 빼면, 지금까지 워터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세 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 중 두 편이 BBC에서 미니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첫 작품인 <티핑 더 벨벳>과 세 번째 작품인 <핑거스미스>. 오늘 다룰 작품은 <핑거스미스>이다.

<핑거스미스>의 시대 배경은 1860년대. 작품의 두 주인공은 런던 길거리에서 자란 핑거스미스(좀도둑을 의미하는 19세기 영국 은어다) 수와 수가 가담한 음모의 희생자인 시골 저택의 상류 사회 아가씨 모드이다. 수는 모드로부터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하녀로 위장해 모드의 저택에 들어가는데, 그만 자기가 정신병원에 집어넣어야 할 이 불쌍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다. 내가 분명히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배배꼬인 음모는 직접 즐기시길.

미니 시리즈 <핑거스미스>는 이상적인 각색물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각 장마다 화자를 바꾸어가며 번갈아 진행되는 (이건 이 소설이 모델로 삼은 윌키 콜린즈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원작의 구성이 처음부터 병렬식으로 전개되는 미니 시리즈의 구성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연출은 <티핑 더 벨벳>에 비해서 거칠고 마무리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핑거스미스>는 즐거운 오락물이다. 그만큼 원작이 단단하고 배우들이 좋다. 이멜다 스턴튼이나 찰스 댄스 같은 노련한 중견 배우들도 좋지만 두 위태로운 연인 역을 연기한 샐리 호킨스와 일레인 캐시디도 훌륭하다. 특히 일레인 캐시디는 이상적인 모드이다.

Acorn Media사에서 나온 DVD의 질은 그냥 보통 정도. 아나모픽인 본편의 화면은 흐릿하고 해상도도 높은 편이 아니다. 소스를 고려해도 조금 더 나은 화질을 뽑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부록으로 제작 다큐멘터리, 포토 갤러리, 배우와 캐릭터 소개가 주어지는데, 역시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다. 특히 제작 다큐멘터리는 시리즈 방영되었을 때 특집으로 내보낸 사라 워터스 다큐멘터리의 일부에 불과해서 미진한 느낌을 준다. 자막이나 클로즈드 캡션은 지원되지 않는다.

제작 다큐멘터리
배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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