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타이틀]
듀나의 DVD 낙서판 <블라인드 데드 콜렉션>
2005-11-23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눈 먼 좀비 기사들의 공포

원래 억지로 누르고 있으면 나중에 튀어 오르는 법이다. 70년대 이후 스페인이 싸구려 저질 호러 영화의 본산지가 되었던 것도 이로 설명이 가능하다. 가톨릭 윤리와 프랑코 독재 정권이 꾹꾹 누르는 동안 제대로 발산하지 못했던 금기와 자극에 대한 갈망이 늙은 독재자가 죽자마자 폭발한 것이다. 수많은 호러 감독들이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온갖 종류의 호러 영화들을 만들었고 그 중 몇몇은 해외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아만도 데 오소리오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데 오소리오의 가장 큰 공적은 ‘눈먼 시체’라는 캐릭터의 발명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동방에서 불사의 지식을 배워온 템플 기사단이다. 이들은 교황에 의해, 또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처형된다. 까마귀가 시체의 눈을 뜯어먹었거나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눈을 지져 장님인 이들의 시체는 600년 뒤에 무덤 속에서 부활해 주변 사람들을 사냥한다.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 괴물들은 자기만의 매력이 있다. 슬로우모션으로 좀비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템플 기사단의 이미지는 쉽게 잊히는 종류가 아니다.

데 오소리오는 70년대에 네 편의 ‘눈먼 시체’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제목이 다 제각각이다. 그래도 오늘 소개할 다섯 장짜리 DVD 세트 영어 제목을 따른다면 그 작품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Tombs of the Blind Dead>, <Return of the Evil Dead>, <The Ghost Galleon>, <Night of the Seagulls>.

시리즈지만 이들의 내용은 연결되지 않는다. 눈먼 템플 기사단의 전설은 1,2편에서만 적극적으로 활용될 뿐이고 그나마 둘 다 디테일이 다르다. 3편에서 기사단은 엉뚱하게 유령선을 타고 있고 4편의 무대는 아무래도 아일랜드인 것 같다. 그래도 내용은 언제나 비슷하다. 굉장히 불쾌한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에 템플 기사단의 좀비들이 나타나 온갖 불쾌한 종류의 학살을 벌인다는 것. 데 오소리오가 만들어내는 인간 캐릭터들은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로 불쾌한 종자들인데, 여기서 인간 혐오의 철학을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1,2,3편까지 일관적으로 계속되는 강간 장면들까지 그런 철학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쎄, 나처럼 그냥 불쾌하기만 한 장면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블루언더그라운드에서 나온 DVD 세트는, 이들이 꾸준히 내고 있는 다른 정체불명의 싸구려 저질 유럽 호러 영화 DVD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좋은 편. 일단 시꺼먼 관 모양의 상자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각자 독립된 디스크에 수록된 네 편의 영화들은 모두 스페인어 버전과 영어 버전이 지원되고 갤러리와 예고편이 부록으로 붙는다. 화질과 음질은 호사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원래 소스와 제작 연도, 필름 보관 상태를 고려해보면 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록인 다섯 번째 디스크에서는 아만도 데 오소리오와 70년대 스페인 익스프로이테이션 영화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다큐멘터리와 인터뷰, DVD-ROM 자료 등이 제공된다. 진짜로 괜찮은 부록은 Nigel J. Burrell이 쓴 부클렛 <Knights of Terror>다. 제작사나 감독에 대한 쓸데없는 예의는 찾아볼 수 없는 가차 없고 냉정한 평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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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도 데 오소리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