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편집의 마술 [4] - <살인의 추억> 김선민 기사
2006-06-08
글 : 이종도
각 요소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나의 데뷔/ <자카르타>

나의 데뷔 경로/ 대학 1학년 때 친구따라 영화 동아리 들어갔다가 졸업할 무렵 이명세 감독이 <지독한 사랑> 연출부를 부산 출신으로만 뽑아 운좋게 영화계에 입문했다. 아는 선배들이 서울 와서 편집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연출부보다 안정적이라고 권해서 함성원 편집실로 들어갔다.

나의 대표작/ <살인의 추억> <남극일기>

나의 이 장면/ 사천터널 장면

*여중생 살해 현장에서 김상경이 내려오다가 터널로 바로 이어진다. 김상경이 터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용의자 박해일 집으로 가면 안 좋을 것이다. 집보다는 복선으로서의 터널이 중요하다. 만약 호흡을 길게 주고 김상경이 박해일 집에 갔다가 나중에야 터널이 나오면 얼마나 리듬감이 없겠는가. 그리고 용의자 집으로 가는 김상경의 미디엄 클로즈업이 전 시퀀스 마지막의 송강호 클로즈업과 바로 같이 붙으면 안 어울리니까 중간에 터널이라는 여정이 있는 게 좋다.

*용의자 집 발차기-터널 발차기/ 같은 동작을 이어붙여서 빠르게 장소 이동을 했다. 신과 신의 리듬을 한통으로 크게 봐서 간 것이다. 공간은 다르지만 감정의 동일함이 중요한 것이다.

*김상경과 박해일의 싸움 중간에 텅 빈 터널을 보여주는데, 시대의 암울한 느낌, 아직도 잡히지 않는 범인 등에 대한 느낌, 용의자의 탈출의 예고, 시간 경과의 느낌이 있다.

*텅 빈 터널 뒤에서 카메라가 보는데, 경찰을 비웃는 듯한 진짜 범인의 시선, 또는 시대 상황이 경찰을 바라보는 시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상경의 총을 보여준 다음 바로 박해일의 놀라는 얼굴로 갔으면 얼마나 심심하겠나. 이렇게 터널을 경유하는 게 더 긴장감을 준다.

*부감숏. 뻔한 걸 선택하지 않기 위한 선택.

*문서엔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귀신을 빨리 보여주지 않고 질질 끌면서 긴장을 높이는 것과 같다. 제발 용의자가 범인이기를 바라는 심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교차편집, 문서를 화면 가득 채웠다가 옆으로 옮겨가는 와이프 효과 등을 썼다.

내가 꼽는 명편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을 좋아하는데 <아이즈 와이드 셧>은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바람에 스필버그가 마무리를 하지 않았나. 맞지 않는 점프컷을 썼다. 점프컷이 충돌하면서 긴장이 생기는데 스필버그는 생뚱맞게 했다. 잘난 척하는 편집이다. 그에 비해 큐브릭 감독의 영화 편집은 잘난 척할 수 있는데 잘난 척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준다.

나의 편집론/ 편집은 선택이다. 기술 시사를 하면 편집할 때 매 순간 고민이 새록새록 되새김된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했는데 그 선택이 잘되었다 싶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했으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왜 그랬을까. 영화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어디로 가는가. 편집은 영화가 어디로 가길 원하는지 알아내고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의 존재이유를 아는 것이며, 거기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편집에서 선택의 기준이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일본영화를 얼마 전에 편집했다. <살인의 추억>이 일본에서 개봉도 하고 제법 알려진 덕에 인연이 되어 연락이 왔다. 아사다 지로 원작의 영화 <지하철>이다. 올 가을 개봉예정이다. 어제 기술 시사를 다녀왔는데 일본어 학원을 2개월가량 다녔지만 대충 일본어란 게 저런 거구나, 아는 정도다. 그쪽에서 아비드에 한글을 박아넣고 매 테이크에 번역을 깔아 편집을 도와줬는데 자막도 없는 영화를 보면서 일본말을 내가 다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말이 해석되는 듯한 기분이었고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일본 가수의 엔딩곡을 들으면서 비로소 일본영화구나 하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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