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편집의 마술 [11] - <극장전> 함성원 기사
2006-06-08
글 : 이종도
주어진 여건에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든다

나의 데뷔/ <모텔 선인장>

나의 대표작/ <8월의 크리스마스> <아름다운 시절>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나의 데뷔 경로/ 고향 부산에서는 16mm 필름 작업하는 곳도 구경하기 힘들 정도로 당시 영화하기가 힘들었다. 계간 <영화언어> 사무실이 부산에 있을 때였는데 프라모델 가게를 꾸려 사무실 운영을 충당했다. 서울에서 동시녹음 조수를 구한다고 선배가 내려왔는데 내가 하겠다고 덜컥 말했다. 집에다가는 내일 서울 올라가겠다고 인사 드렸더니 황당해하셨다. 서울에 올라갔다가 작품이 엎어져 뭐라도 할 게 없을까 했는데 편집 자리가 있었다. 박순덕 기사 밑에서 배웠다.

나의 이 장면/ 홍상수 감독과 편집할 때는 홍 감독이 자신이 찍어온 장면의 의도가 와 닿는지 안 와 닿는지를 물어본다. 가령 아저씨(김명수, 전상원(이기우)이 아빠라고 불러도 되느냐고 묻는 사람)와 엄마(이경진)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 보이느냐는 거다. 이 컷에선 엄마가 “상원이가 비위가 약해서 안 된다, 당신은 안 따라가고 뭐하냐’는 마지막 부분이 잘렸다. 신이 너무 길어지고, 아저씨와 엄마 사이의 관계가 필요없이 명확해지며, 엄마가 너무 강하게 보여서이다. 지금 <해변의 여인>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서 현장에서 편집을 하지만 <극장전>은 한꺼번에 촬영 끝나고 2주간 편집했다. 감독없이 혼자 하면 전혀 다른 리듬의 영화가 나와서 안 된다. 컷을 하나 잘라내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홍상수 영화는 여느 영화처럼 길이나 리듬 조절 위주의 편집이 아니다(정성일 평론가에 따르면 <극장전>은 전체가 89컷이다. 함성원 기사가 최근 끝낸 <강적>은 한신에 200컷이 넘는 것도 있다). 컷이 많지 않은 까닭에 커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촬영시 카메라 앵글과 사이즈를 결정하면 여분의 앵글과 사이즈로 찍는 법도 없다.

*이기우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연결장면. 계단에서 발이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남아 여운을 준다. 남산타워를 비출 때처럼 중간에 끊지 않고 길게 여운을 주는 게 <극장전>의 특징이다.

*부감으로 상원이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는 장면. 이제 영화 속 영화를 끝내는 음악이 나온다. 변화가 있어서 좋다. 홍 감독 초기 영화는 거칠고 강렬한데 지금은 부드러워졌다. 이야기 중심으로 재미가 더 옮아가고 커팅의 리듬도 정서적으로 안정되어간다. 보통 영화들이 단거리를 달리는 느낌이라면 홍상수 영화는 산책해 걷는 느낌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태양을 향해 망원렌즈를 끝까지 당긴 뒤 카메라가 빠지는데 단순히 석양이 시간 경과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상원이 엄마에게 혼나고 와서 엄마를 찾는 대목인데, 다른 영화라면 절대 안 하는 컷 전환이다. 자연스럽지도 않고 연결감도 없다. 보통 쓴다면 인서트나 상황의 변화를 보여줄 때 이렇게 태양을 쓰는데 여기서는 홍상수적인 리듬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음악 소리로 다음 시퀀스가 이어지는데, 홍 감독은 편집의 반 이상을 음악에 할애한다. 곤혹스러운 게, 연결장면에 음악을 넣는다는 거다. 컷과 컷 사이에 짤막하게 들어가는데, 보통은 시퀀스 하나 전체에 깐다든지 신 전체를 관통하는데 말이다. 홍 감독 영화에서는 소리가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 홍 감독은 소리를 매우 민감하게 생각한다. 100% 동시녹음이며, 후시녹음을 하는 일은 없다.

*영화관 내부를 안 보여주고 극장에서 나오는 엄지원과 전화하며 나오는 김상경을 차례로 보여주며 한컷으로 경제적으로 장면전환을 했다.

내가 꼽는 명편집/ <트래픽>. 리드미컬하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문 열고 들어와서 프레임 아웃되는 장면인데 그냥 걸어오면 1분은 걸리는데 3개 컷으로 나눠서 문 열고 들어와 클로즈업으로 빠지는 구성을 했다. 커팅으로 필요한 것만 보여주면서도 점프컷의 튀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거슬리지 않게 넘어가는 리듬감이 깔려 있다.

나의 편집론/ 작품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 얼마나 드라마를 잘 이해하느냐다. 어떻게 무엇을 표출할 것인가.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고, 최초 시나리오대로 안 나온다면 차선책으로 더 나은 상황으로 좋아지게끔 유도하는 게 편집이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조수 때였는데, 개봉 바로 전날인 금요일이었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상영관 프린트에서 일부를 잘라달라는 거다. 신촌 일대를 몇자씩 자르러 돌아다녔다. 기자 시사 뒤 믹싱을 다시 하고 편집도 다시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게 영사실로 가서 몇자씩 자르는 일은 많지 않다. 요즘처럼 확대 개봉을 하지 않으니까 다 돌아다닐 수 있었다. 편집실 직원이 모두 출동해 상영관을 돌아다니며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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