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편집의 마술 [8] - <취화선> 박순덕 기사
2006-06-08
글 : 이종도
아까운 한 컷을 버려도, 드라마를 살린다

데뷔작/ <똘이장군-간첩잡는 똘이장군>(1979)

나의 데뷔 경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양녹음실로 들어가 녹음과 편집 일을 배웠다.

나의 대표작/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춘향뎐>

나의 이 장면/ 장승업(최민식)과 매향(유호정)의 마지막 조우.

*임권택 감독 영화의 편집은 기교를 잘 부리지 않는다. 템포를 중시하는데 다 설명하지 않고 점프하면서 설명을 단순화한다. 군더더기 장면은 미리 배제한다. 첫 장면의 축은 매향과 오원의 만남이다. 시대 상황 속에서 카메라가 들어가면 매향의 시점으로 오원이 보인다.

*오원이 확인하는 리버스 숏.

*매향이 프레임 아웃된 뒤 들어오지 않고 화면 오른쪽에서 나온다. 바로 클로즈업으로 오원을 잡거나, 또는 오원과 매향을 크게 잡으면 재미가 없다. 매향이 프레임 아웃된 뒤 바로 오른쪽에서 잘라서 들어오면 느낌이 덜 온다. 만남 과정을 넓게 안 보여주면 만나는 과정의 슬픔이 덜해진다는 거다. 더 정감있고 미묘하고 풍부해진다. 최민식을 크게 잡은 다른 컷도 있었는데 버렸다.

*집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발로 갔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늘어지면 안 된다. 끝으로 갈수록 드라마로 몰고 가야 하는데 시선을 다른 곳에 분산시키면 매향과 오원의 관계가 늘어지고 구구절절해진다.

*다음 풀숏에서 귀퉁이에 평범한 도자기를 잡아준다. 앞에서 보여준 뒤 뒤에 오원에게 끼칠 영향을 암시한다. 도자기가 여러 번 잡혔으나 두 사람 사이의 드라마가 약해져 잘랐다. 도자기를 보는 오원의 시선, 매향이 자기 손으로 빚은 도자기에 대해 너그럽고 여유있고 따뜻하다고 말한다. 거의 처음으로 오원의 시선이 너그러워진다.

*시간 경과를 알려주는 컷. 오원의 컷이 없이 간결하게 간다. 마지막 남겨둔 그림으로 오원이 사라졌음을 알려준다.

내가 꼽은 명편집/ 최근엔 <범죄의 재구성>을 잘 봤다. 박곡지가 한 <쉬리>가 생각난다. 다리 교전 장면은 많이 찍었는데 2, 3컷만 쓰고 버렸더라. 그렇게 힘들게 찍고 버리기가 어렵다. 편집자가 과감하게 했다.

나의 편집론/ 거칠어도 드라마를 살려야 한다. 컷 하나하나가 아니라 드라마 전체가 중요하다 드라마가 깨지면 안 된다. 고생스레 잘 찍은 것, 애착이 가는 컷, 그림 좋은 컷들을 자르는 게 제일 어렵다. 드라마에 거슬린다면 필요없는 장면이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밤을 새워 편집하고도 아침이면 선배에게 세숫물과 수건을 갖다바치는 도제제도를 거쳤다. 스탠백으로 할 때는 <진짜 사나이> 같은 경우 18만자를 찍었는데 자르는 분량도 엄청났지만 35mm를 16mm로 축소하면 키코드가 없어져서 양쪽에 일일이 다 키코드를 적어야 한다. 적는 일이 지겨워서 내가 뭐하는 인생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필름을 직접 하는 맛이 있지만 말이다. <취화선>은 처음엔 2시간35분 버전이 나왔는데 그걸 국내용으로 하고 칸에는 2시간짜리를 보내려고 했다. 그랬더니 너무 복잡해지는 거다. 필름이 15만자(6900자가 한 시간 분량)인데 듀프(사고를 대비한 복사본)를 뜰 제작자가 어디 있는가. <취화선>은 촬영 중에 그때그때 편집실로 온 촬영분량을 편집하면서 그때마다 찍은 것과 편집한 걸 35mm로 봤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텔레시네한 것으로 보면 색감이나 여러 가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색상이 다르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필름을 먼저 본 뒤 아비드로 편집하고, 그 편집에 따라 포지티브 필름을 편집해서 양수리 시사실에서 영사기 걸고 봤다. 새벽 2∼3시에 호출하기도 하는데, 제작부가 차를 가져오면 양수리에 가서 느슨한 필름 컷들을 잘라내고 아침에 돌아오기도 했는데 편집 끝까지 항상 대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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