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편집의 마술 [7] - <죽어도 좋아> 문인대 기사
2006-06-08
글 : 이종도
반응숏의 효과를 노린다

나의 데뷔작/ <7인의 새벽>(2001)

나의 데뷔 경로/ 컴퓨터 관련 일도 하고, 장사도 했다가 먼저 영화판에 들어간 친구인 녹음기사 이승철의 권유로 ‘친구따라 강남행’.

나의 주요작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너는 내 운명> <싸움의 기술> <방과후 옥상> <손님은 왕이다>

나의 이 장면/ 할아버지가 나들이 나가서 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 할머니를 찾아 나서는 장면.

*나들이 다녀오겠다는 할머니 쪽지가 클로즈업된 뒤 할아버지가 잠자리에서 뒤척인다.

*할아버지가 기다리다 못해 시장으로 나가 할머니를 찾는 신이 이어진다. 원래 찍은 순서와 달리 편집했는데, 가장 행복한 결혼 사진 뒤에 암울한 느낌으로 빠져 들어가는 시퀀스다. 실제 사건의 재연이기도 하다. 적절한 비약으로 할아버지가 오래 찾아 헤맨다는 느낌을 줬다. 디지털카메라로 핸드헬드의 느낌을 주었고 왕가위 감독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흐르는’ 화면이다.

*첫 번째 부감숏은 번잡한 시장 공간 속에 할아버지의 고립된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이다. 상황 설명에 가까운 컷.

*핸드헬드 카메라가 할아버지를 뒤쫓는다. 감정적으로 급하게 찾는다는 느낌을 준다. 보기 드물게 이 영화에선 역동적 신이다.

*더이상 갈 곳도 없고, 이제 포기하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멈춰 있고 카메라만 움직이고 있다. 실제 영화의 흐름 중 신경 쓴 건 노인문제가 줄 수 있는 느린 리듬으로, 컷을 화려하게 나누고 동작을 빨리 가져가도 관객은 느리다고 느낀다. 100분 이상 분량을 67분으로 줄이면서, 리듬과 호흡에 신경을 많이 썼다.

*맨 처음 컷으로 잡힌 것을 맨 마지막으로 돌렸다. 첫 컷으로 잡으니 할아버지의 역동적인 스피드감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에 붙어 있는 컷들의 감정이 약해졌다. 이 컷은 시작이라기보다는 영상이 향해 가는 최고의 극점이다. 리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를 극점으로 삼는데, 극점으로서 느낌이 좋다. 감독이 첫 컷으로 쓴 의도는 할머니가 오지 않으니까 혼란스러워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소극적인 기다림- 적극적인 할머니 찾기- 좌절의 점층적 표현이 낫다고 보았다.

내가 꼽는 명편집/ 편집을 보려고 해도 편집을 볼 수 없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김현 기사의 작품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몰입이 잘된다. 무게중심이 잡혀 있다. 철학적 영화를 많이 했는데 그런 영화가 재미를 주기 힘든데도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고, 편집을 보려 해도 안 보이는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경마장 가는 길>에서 리얼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독특한 긴장감으로 끌고 간다.

나의 편집론/ 난 반응숏은 철저하게 놓치지 않는다. 영상을 지배하는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대한 반응이 꼭 있어야 한다. 있으면 최대한 활용한다. 슬픈 장면은 상주의 눈물을 잡는 게 아니라 문상객의 눈물을 잡는 장면이다. 리액션에서 울려주는 게 더 슬프다. 거기에 대한 집착이 있다.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박진표 감독은 TV PD 출신이라서 편집 9단이다. <너는 내 운명>을 할 때는 그와 내가 서로 다른 방에서 편집하며 무수한 버전을 만들었다. 서로 한 것 중에 더 좋은 부분을 골라냈다. 편집과 믹싱도 다 끝났는데 박 감독이 아이디어를 들고 온 게 기억난다. 황정민이 전도연에게 우유를 주는 장면인데, 전도연이 집는 걸 보고 황정민이 행복해하는 표정이 원래 없었다. 삭제된 것 중에 황정민이 전도연의 일터를 확인하고 웃음 짓는 장면이 있는데 그 컷을 가져와서 여기에서 살렸다. 사막에서 물 만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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