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편집의 마술 [10] - <그때 그 사람들> 이은수 기사
2006-06-08
글 : 이종도
청소하듯 수술하듯 쉽고 깔끔하게 다듬는다

나의 데뷔/ <플란다스의 개>

나의 데뷔경로/ 불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학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건너갔는데 시네마테크에서 여러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프랑스 영화실기학교에서 편집을 전공했다.

나의 대표작/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 <로드무비>

나의 이 장면/ 도입부 주 과장, 대통령 소개 장면.

*영화 첫 대목은 세 주인공을 차례로 소개하는 시퀀스 세개가 연결되어 있다. 첫 시퀀스는 대통령에게 여자를 조달하는 한석규, 두 번째 시퀀스는 국사보다는 여자문제를 걱정하는 대통령을 소개한다. 첫 장면은 여자 가슴으로 먼저 시선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는 어디고 저들은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한석규가 하는 일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카메라는 조금 밑에서 위층에서 이 장면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한석규의 얼굴을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이때 안에서 윤여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석규가 요정 안으로 들어갈 거라는 예고다.

*아침부터 여자 조달 문제에 시달리는 한석규가 이 신의 주인공이다.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카메라가 훑으며 경제적으로 한 사람씩 소개하고 있다.

*윤여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 얘기하는 걸 보여주는데, 한석규는 귓등으로 흘려듣고 윤여정을 바라보지 않는다. 새로 조달할 수 있는 뉴페이스(조은지)를 보는 것이다.

*역시 여기가 어디이고 누구와 있는지 궁금하게 하는 대목. 앞에서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채홍사를 보여준 뒤 대통령을 소개하는 신이다. 긴장감과 살짝 재미를 주는 대목이다. 바로 대통령을 소개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소개하며 비서실장의 대사를 들려준다.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헬리콥터를 통해 여기가 헬리콥터 안임을 보여준다. 위치와 장소를 미리 보여주는 것보다 사람을 먼저 보여주는 게 매끄럽게 넘어간다. 긴장감과 넘어가는 맛을 주는 것이다.

*비서실장은 국정의 성취에 대해 감개무량하시냐고 물어보지만 대통령은 시선을 다른 데 두고 들은 척 만 척하면서 물개 불알의 행방을 걱정한다.

*리버스숏에서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온다. 처음부터 풀숏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처음엔 안 보이던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나며 재미를 준다. 편집은 너무 알려주지도 않고, 너무 숨기지도 않으면서 긴장감을 조율하는 작업이다.

*나라 지키기보다 물개 불알을 걱정하는 대통령이 현재 있는 장소가, 본인이 나라 지키는 표상으로 삼은 이순신 장군 동상 위라는 것을 보여주는 컷. 여러 개 찍어온 컷 중에서 가장 시원한 것을 골랐다.

내가 꼽는 명편집/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는 죽은 사람들, 칼 드레이어, 장 뤽 고다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를 좋아한다. 그 사람들의 편집보다는 이야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야기는 결국 어디서 오는지 생각한다. 문학에서 오는 게 아닌가. 영화가 예술이 되게 하는 건 문학적 요소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안토니오니의 <정사>의 섬장면을 보면 편집이 다 어긋나 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건데 읽어낼 수 있다면 좋은 편집이고 읽어낼 수 없다면 개판인 거다.

나의 편집론/ 편집이란 마지막에 모든 영화적 요소를 뒤섞고 거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살릴 것이냐를 컨설턴팅하는 과정이다. 관객이 이해하기 쉬운 배열로 만드는 게 원칙이고 지엽적으로는 너무 컷이 많아 너덜너덜해진 걸 심플하게 다듬는다. 편집의 법칙 가운데 하나는 소스불변의 법칙이다. 좋은 소스가 때로는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쁜 소스로 좋은 걸 만들 수는 없다. 무명으로 실크를 만들겠는가. 편집을 할 때면 청소하는 것 같고 수술하는 것 같다. 아는 만큼,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보는 거다. 그 아는 힘이란 책읽기에서 오는 것 아닐까.

나의 편집실 에피소드/ 3월 말 때 폭설이 내려 촬영이 취소된 <오래된 정원> 촬영현장에서 임상수 감독은 점심을 먹고 느지막이 봄햇살을 즐기려다가 전화 한통을 받았다. 촬영이 취소된 휴일 같은 오후였지만, 이은수 기사는 현우(지진희)가 서울에 다녀오는 여정없이 바로 갈뫼장면이 이어져 갑갑하다고 전했고 제작진은 급작스레 강원 정선역의 도움을 받아 관광열차에서 현우의 서울행 기차장면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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