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8 한국영화 신작]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
2008-01-10
글 : 최하나
사진 : 이혜정
방자, 이몽룡과 한판 뜨자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과 정절의 드라마를 그리는 동안 방자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아니, 만약 그를 단역이 아닌 주연의 자리에 놓아본다면 어떤 색깔의 이야기가 펼쳐질까.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은 <춘향전>의 시간을 방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작품이다. “원래는 하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왜 외국 영화를 보면 벽에 달린 벨을 잡아당기면 하인이 정식 하인복을 입고 딱 들어오지 않나. 생각해보면 이들도 화장실에 가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하는데 항상 벨 옆에 옷을 차려입고 기다렸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게 겉으로 흘러가는 풍경 속에 자기들만의 사연이 다 있다는 생각이 재미있었다.” 역사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소외돼온 “그들”의 시간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신분제가 존재하던 시대로, 고전의 포맷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방자’라는 소재는 실상 우연처럼 떠오른 것이었다. “옛날에 허준호씨가 아버지 허장강씨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는 왜 만날 방자만 해요, 그랬더니 허장강씨가 야, 임마 <춘향전>은 원래 방자 보자는 거야, 방자가 주인공이야, 했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10년도 더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하인 이야기를 해봐야지 생각하니 갑자기 떠오르더라. 아, 그러면 <방자전>을 한번 해봐야겠다 싶었다.”

<방자전>은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의 중견급 시나리오작가에서 2006년 <음란서생>으로 연출 데뷔전을 치른 김대우 감독이 두 번째로 메가폰을 잡게 되는 작품이다. 첫 연출 경험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정말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예전에는 내가 막 써내려가면 다른 것은 나머지 사람들이 알아서 해줬는데, 이제는 내가 바로 그 알아서 해주는 사람이 되다 보니 확실히 어렵더라고. (웃음)” 2007년 4월경에 시작됐다는 <방자전>의 시나리오 작업은 이제 마지막 두줄 정도만 남겨놓은 상태. 하지만 “굳이 감추려는 게 아니라 지금 상태가 압력밥솥인데, 김이 한번 새나가면 압력을 만드는 데 또 시간이 필요하다”는 김대우 감독은 작품의 스토리 라인을 드러내는 데 있어 꽤나 예민하고 인색하다. 다만 <음란서생>이 행복에 관한 이야기, 무언가를 얻음으로써 잃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방자전>의 테마는 “질투”가 될 것이라고. “이런 구조인 것 같다. 이몽룡과 방자라는 주인과 종의 관계와 뺏고 뺏기는 질투의 관계, 두 구조를 병합시킨다고 해야 하나. 한명의 이성이 있고, 두명의 남자가 있어서 누구는 갖고 누구는 못 갖는 거다. 질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과 종의 관계와 겹치면 어떻게 될까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방자와 이몽룡은 춘향을 사이에 놓고 경쟁하는 관계? “스토리 라인은 이야기를 안 했으면 하는데.” 김대우 감독이 다시 한번 말을 아낀다.

<방자전>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레 연상시키는 것은 전통적인 마당극이다. 하지만 김대우 감독은 그러한 이미지가 참고의 지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벗어내야 할 오해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마당극 정서의 척추는 해학이지 않나. <방자전>이라는 제목을 딱 들었을 때 해학극이라 생각하게 되는 이미지를 차차 벗어나려고 한다. 해학극이 아닌 상황에서, 하인이 벌이는 이야기에 대한 포장을 새롭게 찾아가야지. 못 벗어나면 뭐, 같이 죽는 거고. (웃음)” 주인공 방자의 캐릭터 또한 우리가 전형적으로 상상하는 “익살맞고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인물의 궤도를 크게 벗어나 “다루기 어려운 사람”으로 그릴 예정이다. 김대우 감독이 드문드문 던져준 단서들로 추론해본 <방자전>은 “사람은 누구나 주인공이다”라는 기획 의도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무척 현대적인 남자들의 이야기가 될 공산이 크다. “농담 비슷한 아이디어는 기술은 신분을 뛰어넘는다는 거다. 이몽룡은 부잣집 아들이고 양반이지만, 그런 조건들로 방자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남자로서 승부하고 싶어한다. 또 방자도 이몽룡에게 지고 싶지 않은 거고. 한마디로 헐벗은 남자들의 경주라고 할까. (웃음)”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음란서생>에 이어 시대극 작업만 벌써 세 번째인 김대우 감독이지만, 방자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커다란 난점은 실질적인 자료의 부족. “사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할 때부터 극중에서 배용준을 따라다니는 남자에게 생활을 주고 싶어 자료를 찾아봤는데, 하인에 대한 자료는 정말 없다시피 하더라.” 당시 피지배 계급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토대는 물론, ‘방자’라는 단어가 이름을 의미하는지 직책을 의미하는지 적시하는 대목 또한 찾아내지 못해 아직도 김대우 감독의 고민은 끝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고증에 대한 그의 개념은 “옷의 틀이 되는 디자인은 지키되, 색깔에 있어 변화를 주는 것.” 사료의 기근에서 출발한 <방자전>은 역으로 역사의 페이지에서 누락된 공간을 더욱 풍성한 상상력으로 채워넣을지 모른다. “<음란서생> 때 안 가본 한옥이 없어” 로케이션 걱정만큼은 크게 하지 않는다는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은 2008년 3, 4월 “꽃이 필 즈음”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나 이거 처음이야

<송어>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탄탄한 시나리오를 써온 작가 출신 감독 김대우가 연출 데뷔작인 <음란서생> 때까지 가장 자신했으며, 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역시 내러티브였다. “내러티브가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했고, 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는데,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배우들이 애드리브를 하라 말해도 하지를 않더라. 내가 내러티브 위주로 찍는 걸 알고 즉흥적인 것을 하면 스토리 라인에 무리를 줄까봐 그랬던 거였다.” 향후 <방자전>의 제작과정에서 그가 그리고 있는 청사진은 그래서, 이전의 작업 방식과는 달리 “내러티브를 느슨하게 가져가면서, 애드리브도 하고 배우들하고 즐겁게 잘 놀 수 있는” 형태다. 첫 번째 연출 경험을 거치면서 “이렇게 쓰면 배우들이 연기하기를 재밌어할 것 같다” 싶은 노하우들이 생겼고, 자연히 <방자전>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데도 그러한 작은 교훈들이 보탬이 됐다. 또 “본래 주인공이 있으면, 그 아래 조연들에게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다채롭고 굵직한 조연들을 선보였던 <음란서생>과는 달리 <방자전>은 주로 메인 캐릭터에 집중을 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갈 예정이라고.

시놉시스

아직 시놉시스가 공개되지 않은 <방자전>의 이야기는 김대우 감독이 던져준 단서들에 상상력을 덧붙여 대략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정도다. 우선 기본적인 뼈대는 <춘향전>의 사건들을 방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 기존의 <춘향전>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알고 보니 “방자가 시킨 것도 많고, 중재한 것도 많으며, 음모한 것도 많다는” 설정으로, 자연히 춘향과 이몽룡의 관계 또한 그러한 방자의 영향력 안에 놓이게 된다. 또, 이몽룡과 방자는 이른바 “남자의 자존심”을 놓고 경쟁을 펼치는 구도로 그려지게 된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에 놓인 두 남자가 신분과 관계없이 하나의 사랑을 놓고 경합하는 <방자전>의 드라마는 한마디로 “계급장 떼고 싸우자”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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