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판석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영화 <국경의 남쪽>(2006)으로 망했고, 드라마 <하얀 거탑>(2007)으로 다시 흥했다. <국경의 남쪽>을 끝낸 뒤 그는 한동안 잠행했다. “찾는 사람도 없고 친한 사람들은 또 내 눈치 보느라 연락없고. 가만있어도 저절로 고즈넉한 시간이 찾아오더라.” 심지어 이 무렵엔 세금도 제대로 내지 못할 형편으로 오해받아 아들이 미국 비자도 제때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얀 거탑>이 재기를 위해 처음부터 작심하고 덤벼든 결과는 아니다. <국경의 남쪽> 전에 김종학 프로덕션쪽에서 드라마 한편을 만들어야 했고, 일본 원작 소설이 1960년대에 쓰인 것이라 작가에게 각색을 위한 취재를 부탁한 뒤, 그는 <국경의 남쪽>에 빠져들었다. 뒤늦은 약속을 지킨 셈인데, 그 <하얀 거탑>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그리고 낙담한 자신에게 “힘을 준” 보약이 될지는 그도 미처 몰랐다.
<하얀 거탑> 이후 드라마하우스에 새 둥지를 튼 그는 현재 박경수 작가와 두 번째 영화 <암행어사>(가제)의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실 <암행어사> 이전에 그는 러키 경성을 꿈꿨던 인천의 ‘미두왕 반복창’에 흥미가 일었는데, 다른 제작사에서 준비 중이라고 해서 접었다. 최근에야 무죄임이 증명된 1970년대 인민혁명당 사건에도 솔깃했지만,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라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나보다 먼저 준비한 사람들이 있는 걸 알면서 덤비는 건 상도의상 문제가 있다. 게다가 먼저 찜한 사람들이 무성의하면 모르겠는데 차근차근 준비를 했더라고.” 그러다 만난 이야기가 ‘조선시대판 007’이라 할 수 있는 <암행어사>였다. 감독과 작가가 서로 주고받은 쪽지를 보니 주제는 ‘권선징악’, 장르는 ‘코믹 통쾌 사극’이다. 날라리 암행어사 최호평이 진정한 백성의 관리로 변해간다는 줄거리. 극중 최호평은 유혹에 무진장 약하고, 함정에 곧잘 빠지는 삿갓 쓴 007이다. 당파 싸움에 휘말려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최호평은 빚 독촉에 나선 낙원루 기생 소희의 몸을 탐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최근에 작업한 두편이 모두 어두운 이야기라서. 이번엔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며 <암행어사>를 집어 든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이야기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활극의 요소가 있고, 그 안에 최호평과 소희의 로맨틱코미디가 있고, 또 제 잇속 차리는 권력형 인물들을 중심으로 읽으면 지금의 사회까지 풍자할 수 있는 우화로도 볼 수 있다.” 무조건 가지치기를 했다간 다중구조의 매력이 손상될 수밖에 없는 터라 “어제는 이랬다가 오늘은 이랬다가” 오락가락하는 중이라고. 다만 한 가지 목표는 정해뒀다. “<하얀 거탑>에 대중의 반응이 좋았던 건 때깔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얀 거탑>은 기교를 보여줘야 하는 대목에서 보여주고 넘어갔다. 한국에서도 저런 걸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이른바 근대화의 성취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반면에 <국경의 남쪽>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굳이 택하자면 <암행어사>는 있는 그대로 놔둬야 할 이야기라기보다 뭔가 재주를 보여줘야 하는 드라마”다.
그렇다고 <암행어사>가 ‘럭셔리하고 버라이어티한’ 사극을 표방하는 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스펙터클은 시각적인 효과라기보다 심리적인 자극이다. “클라이맥스인 어사 출도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역졸들의 손에는 육모방망이밖에 없지만 관객에겐 어마어마한 볼거리처럼 여겨져야 한다. 그건 화려한 시각효과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과 절간에서 국사발 깨지는 것과 어떤 것이 더 스펙터클한가”라는 반문으로 이를 설명한다. 현재 작업 속도라면 <암행어사>는 이르면 2008년 5월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선시대의 풍습에 관한 책을 책상에 펴놓은 채 인터뷰를 진행한 안판석 감독은 “운전을 처음 하면 눈앞에 있는 것만 보다가 나중에는 사이드미러도 보고 담배도 피우고 그런다. 연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면서 <암행어사> 촬영현장에서는 전보다 훨씬 여유롭되 더 매서운 눈으로 “그럴듯한 개연성의 세계를 그려 보이겠다”고 자신한다.
나 이거 처음이야
안판석 감독은 드라마까지 통틀어서 지금까지 사극을 찍어본 적이 없다. 기회가 없었다기보다 관심이 없었다. “지금 내 주변의 일들에 더 재미를 붙이며 살아와서 그런가보다”는 그는 “사극은 대개 거대한 인물, 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자신의 취향은 소소한 일상에 돋보기를 가져다대는 것이었다고 덧붙인다. 직접 자신이 만들진 않아도 다른 이들이 만든 사극을 즐겨보진 않을까. “사극에는 정형화한 프로토콜이 참 많다. 어서 들라 하라, 뭐 이런 거. 현대물에서는 용서가 안 되는데, 사극에서는 상투적인 상황들이나 대사들이 아주 많다 보니 보는 것도 흥미가 별로 없었다.” 사극은 연출하기도 싫고 보기도 싫다는데 <암행어사>(가제)는 도대체 왜? “사극이어서라기보다 이야기가 좋은 그릇 같더라. 이것도 담을 수 있고, 저것도 담을 수 있고.” 그는 아직 최종 트리트먼트 작업 중이라 자세히 말하긴 그렇다면서 대신 정약용의 서간집의 한 대목을 비유로 꺼내 든다. “정약용이 유배된 뒤에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에게 꼭 사대문 안에 살고 있으라고 쓴다. 지금으로 치면 하늘이 무너져도 서울 강남 안에 살고 있으라는 당부다. 그래야만 앞으로 뭔가를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걸 보면 정약용 같은 인물에게도 인간적인 면이 있구나 싶으면서도 저 사람도 별다른 종이 아니구나 싶더라. <암행어사>(가제)도 그렇다. 그 속의 인물들을 미시적으로 파고들면 지금 우리의 초상이 나오지 않겠나. 조폭을 다룬다고 할 때 우리가 모르는 대상이라고 ‘몬도가네’처럼 그리면 안 된다. 깡패도 사람이라고 여기고 접근해야 뭔가 나온다. 옛사람, 옛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놉시스
“술 많이 좋아하고 여자 몹시 좋아하는” 홍문관 교리 최호평. 대궐 밖으로 나서면 낙원루 왈짜패가 밀린 외상값 500냥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을 게 뻔한지라 그는 제 차례가 아닌데도 숙직을 자청한다. 대궐을 피신처 삼은 최호평을 충신으로 오해한 왕은 얼마 뒤 그를 암행어사에 제수한다. 엉겁결에 마패를 손에 넣은 최호평은 부친의 친구인 동인의 거두 홍대형을 만나고, 서인 출신 수령들의 부정부패 내역이 소상히 적힌 ‘X문서’를 건네받는다. 따로 염탐하고 조사할 것도 없이 즐기면서 “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면 되니 공무 수행은 식은 죽 먹기. 외상값을 받아내기 위해 끈질기게 따라붙은 소희 패거리와 일행이 된 최호평은 탐학한 수령들을 제압하고 또 백성의 환호에 재미를 붙여가던 차에 홍대형에게 더이상 서인 수령을 응징하지 말라는 내용의 급서를 전달받는다. 어찌된 일인지 왕 또한 최호평에게 암행어사를 명한 적 없다는 교지를 내린다. 옥살이시키다 옥살이당하게 된 최호평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