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8 한국영화 신작]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가제)
2008-01-10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오! 스키점프 국가대표는 괴로워

리얼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을 만나 스키점프 국가대표에 대한 아이템을 들었던 것이 2007년 초였다. <미녀는 괴로워>가 개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한편 완성하면 적어도 1년은 다부지게 놀아야 직성이 풀리는 김용화 감독은 몇년째 단상으로만 머물던 시중의 프로젝트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의지와 무관하게 내 머릿속은 스키점프 국가대표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었다. 실력은 있지만 국가대표를 할 수 없는 처지의 입양아와 여자애들 꼬이기 바쁜 삐끼와 성인이 됐는데도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친구와 <오! 브라더스>의 봉구 같은 4차원 세계를 헤매는 동생을 둔 청년. 시나리오에 있는 청춘들의 모습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때 캐릭터들이 고스란히 시나리오에 등장한다.” 원 대표로부터 스무살 언저리의 양아치들이 군대를 면제받겠다는 불순한 목적으로 스키점프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는 그는 “그 자체로 상승과 도약과 극복의 임팩트를 보여주는” 스키점프 영상을 보고 나서 “내가 싫어서 도피하려고 했던 인물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또 되돌아보는” 휴먼드라마가 가능할 것 같았다.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에 이은 휴먼 3부작” <국가대표>는 그렇게 싹을 틔웠다.

물론 처음엔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1등 같은 꼴찌”가 가능할까 싶긴 했다. 괜한 작위가 아닌가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실제 모델을 만나자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취재를 위해 스키점프 선수들을 만난 때가 2007년 5월. “중학생 때까지 태권도를 했고, 강원도 대표로도 활동했던지라”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그는 “술 마시면 안 되는 친구들에게 술 사줘가며” 몇달 동안 지켜본 결과 “그들이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멋진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스키점프 시즌이 끝나면 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데 분양 사무실 가서 인형 뒤집어쓰거나 오토바이 뒤에 깃발 꽂고 홍보 일을 하기도 하고 인형 눈이나 봉투 붙이는 일을 해서 돈을 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자신들의 삶을 전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걸 보면서 진짜 국가대표구나 싶었다.” 텃밭에서 미끄러지고 나무에 매달려 자세를 잡고, 120m 점프대 위에 서기 위해 사비를 털어서 스키복이나 장비를 샀다는 에피소드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들이 지금 점프하는 걸 보면 성장통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청년들의 여유가 보인다.”

김용화 감독은 12월28일부터 스키점프 한국 국가대표단과 함께 이른바 ‘빅4’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 원정길에 오른다. 점프대 위에 선 선수들의 긴장을 좀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아예 코치 아이디까지 얻어놨다. 독일의 뮌헨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 등을 도는 여정에 주요 스탭들까지 참여하는 까닭에 “참가인원을 채우지 못해 경기시작 전까지 출전여부를 놓고 고심해야 했던” 국가대표팀은 뜻밖의 원정응원대를 얻은 셈이다. 대회장면 촬영을 위해서 현재 제작진은 폴란드 2급 선수들과 접촉 중이다. “2, 3진이라고 해도 랭킹 20위 안에 드는 수준급 선수들”이라는 게 김용화 감독의 말. 일본만 하더라도 “스키점프 선수가 3천명이나 돼” 대역 배우를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란다. 다만 막상 경기장면 촬영에 들어가서는 자주 세팅을 바꿀 수 없는데다 “한번 뛸 때마다 목숨을 내놓는 선수들에게 NG가 났다고 다시 점프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사전에 손발을 최대한 맞추는 게 시급하다고 전한다. “언제나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던 배우들이 내 영화를 통해 도약할 때 가장 힘이 난다”는 김용화 감독은 극중 주인공인 입양아 밥 역할 정도만 기존 배우군에서 선택하고(이미 출연 의사를 밝힌 배우가 있다) 나머지 배역들은 오디션을 통해 신인들을 발굴할 예정이다. 5인의 배우들이 모두 확정되면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강행군 훈련을 진행할 예정. 물론 그 뒤에도 감독과 배우들이 넘어서야 할 여러 관문이 남아 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의 이야기는 상처를 에너지로 승화하는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제리 맥과이어>의 톰 크루즈는 나의 페르소나이기도 한데, 자신이 끊임없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자의식에 사로잡힌 우리와 닮았다. 언제 봐도 감동적인 <쿨 러닝>의 마지막 엔딩 또한 염두에 두고 있다. 무리라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국가대표>는 이 세편의 장점을 모두 뛰어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 이거 처음이야

스키점프라고 하니 아찔하고 또 근사한 알프스 산맥부터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정작 <국가대표> 제작진은 극중 2번의 해외 경기장면을 국내에서 찍을 요량이다. 김용화 감독은 “다들 해외 로케이션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안에서 해결할 참”이라며 “이런 경우는 우리가 처음 아닌가?”라고 묻는다. 무주리조트가 300억원을 들여 만든 국내 유일의 스키점프대와 2008년 10월에 완공 예정인 평창의 스키점프대를 활용할 예정이라는 그는 “좋은 장면을 건지려면 가장 큰 관건은 좋은 인력과 좋은 장비를 얼마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가의 여부”라며 “아무리 아껴도 해외 촬영을 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한다. 인력과 기술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도 국내 촬영이 훨씬 좋다”고 덧붙인다. “국내 점프대는 현재 1개뿐이다. 스키점프 선수도 5명뿐이다. 열악한 환경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점프대를 5명의 선수가 독식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웃음)” 김용화 감독이 이렇게 자신을 부리는 데는 박현철 촬영감독, 장근영 미술감독 등 <미녀는 괴로워> 때 호흡을 이미 맞췄던 상당수의 스탭들이 이번 영화에 참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티나지 않는 결과물을 내와야 하는 만큼 촬영 이전까지 프리 프로덕션에 만전을 기할 생각인 김용화 감독은 “CG를 맡은 EON의 정성진 실장은 이미 작업을 시작했다”며 혀를 내두른다.

시놉시스

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대규모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한통의 비보가 전해지자 조직위원회는 발칵 뒤집힌다. 동계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저조한데다 정식 종목인 스키점프가 한국에 부재하기 때문에 신청을 보류한다는 내용이었다. 칼을 뽑았는데 시작도 못해보고 넣을 순 없는 일. 조직위원회는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천마산 어린이 스키교실 코치 방종삼과 오합지졸 국가대표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일단 머릿수를 채우긴 했는데 국가대표랍시고 모인 이들 모두 스키점프는 제대로 구경도 못해본데다 훈련을 할 만한 연습장조차 전무하다는 게 문제. 이가 없으면 잇몸.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고 물 뿌린 인조잔디에서 자세를 익힌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스키점프 월드컵에 참여하지만 꼴찌를 면치 못한다. 게다가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무주가 탈락하자 한국 최초의 스키점프팀은 해체 위기까지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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