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신을 좀 극한 쪽으로 모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안 해본 것에 뛰어드는 걸 좋아하고.” 장편 데뷔작 <내 청춘에게 고함>으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김영남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으로 한일합작 영화 <보트>를 선택했다. 한국의 크라제픽쳐스와 일본의 IMJ엔터테인먼트(IMJE)가 공동 제작하는 <보트>의 이야기를 처음 탄생시킨 것은 그가 아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작가 와타나베 아야다. “내가 시나리오를 처음 건네받은 것이 2006년 12월 즈음이었는데, 이미 그 전에 1년 정도 개발이 진행되어온 상태였다. 아야상(와타나베 아야)의 시나리오에 끌린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것 같아서였다. 편안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체로 삶의 일상성을 전해주는 점이 매력적이다.”
<보트>는 한국인 청년 형구와 일본인 청년 토오루,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형구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물건을 밀수하는 일을 하고, 토오루는 일본에서 그를 맞이하는 남자다. 어느 날, 형구에게 지수라는 여자를 일본으로 밀입국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형구와 토오루의 삶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형구라는 인물은 지킬 것이 없는 친구인 반면에, 토오루는 너무 지켜야 할 것이 많아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친구다. <보트>는 서로 다른 환경의 두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야기다.” <내 청춘에게 고함>이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나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였다면, <보트>는 마찬가지로 청춘의 시기를 무대로 하되 그 안에서 느끼는 ‘고독’에 좀더 초점을 맞춘다. “관객이 더욱 즐겁게 영화를 볼 수 있는” 장르적 요소를 가미했다는 점 또한 김영남 감독에겐 새로운 시도다. “누아르적 요소가 있는 드라마다. 다만 기존의 누아르가 어둡고 침침한 느낌이라면 <보트>는 파란 하늘의 느낌이 살아 있는 영화가 될 거다. 젊은 시절에 우리가 한때 가지는 마음, 설렘도 있고 고독도 있는 청춘의 느낌이 살아 있는 영화.”
세 주인공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했던 <내 청춘에게 고함>의 형식을 들어 “하나의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것은 처음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김영남 감독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내 청춘에게 고함>이 기존의 옴니버스영화들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말끔하게 끝나는 지점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부분인 것 같은데, 나는 거칠게 보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러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더불어 <보트>가 한일 합작이라고 해서, 기존 기획영화의 형식을 떠올리는 것 또한 잘못된 속단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스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거나, 기계적으로 양국 배우들 간의 무게중심을 맞추는 것은 김영남 감독이 무엇보다 “지양”하는 것이다. “영화에 두 청년이 나오고, 그들이 공교롭게도 한국과 일본 사람일 뿐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이건 기획영화식으로 진행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김영남 감독이 본격적인 공동 작업에 착수한 것은 2007년 3월경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또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를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와타나베 아야와 함께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진행했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두 사람이 손발을 맞추는 것이 쉬웠을 리 없다. “말할 때 일부러 통역하기 쉽게 표현해야 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서기 전까지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특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갖고 작업하다 보니, 가끔씩은 정말 뇌를 싹 파가지고 이식하고 싶을 정도였다. (웃음)” 앞으로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가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촬영이 진행될 터. 처음 시도하는 작업에 대한 긴장감은 물론 존재한다. “당연히 어려움이 있겠지만, 어차피 영화 만들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영화에 열정을 담는 일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 같고, 서로 다른 부분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2006년 <내 청춘에게 고함>을 완성한 뒤 “자신에게 말 걸기” 같은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김영남 감독의 소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떤 작품을 만들 건 관객에게 한번,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는 것. “한국에 이런 삶이 있고, 또 조금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살아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들의 갈등과 고민을 통해서 관객이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 다만 <내 청춘에게 고함> 때와 비교해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찾아가서 보는 재미보다, 생각이 나서 집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가 되는 것이라고. <보트>는 “영화를 만들며 타인과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행복해졌다”는 김영남 감독이 고독과 떨림, 불안과 설렘을 한데 품은 청춘의 빛으로 관객을 향해 띄우는 보트가 될 것이다.
나 이거 처음이야
김영남 감독에게 가장 큰 도전이자 과제는 역시 한국과 일본의 공동 제작이라는 새로운 작업 방식에 있다. 특히 <보트>의 촬영의 80% 정도는 일본에서 진행할 예정인 만큼, 자연히 일본인 배우와 엑스트라의 통제가 가능한 일본인 스탭의 비중이 높아지게 될 전망이다. “원래 합작영화는 한국 촬영분은 한국에서 스탭을 뽑아서 하고, 일본에서는 일본 스탭하고 작업하는 식인데, 나는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 스탭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선발해 모든 스탭이 한국과 일본에서 함께 촬영을 진행하게 될 거다.” 김영남 감독이 재차 강조하는 것은 “한국 시스템도, 일본 시스템도 아닌, <보트>만의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물론 한국의 현장과 달리 철저하게 스케줄에 맞춰 작업을 진행하는 일본의 제작방식이 어느 정도 긴장감을 안겨주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원래 현장에서 많이 잡아내고 수정하는 식인데, 이번에도 과연 그런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본 시스템을 존중하고 정해진 스케줄을 지켜가겠지만, 또 그 안에서 대화를 통해 필요한 여유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거다.” 좀더 희망을 갖는다면, <보트>가 제시하는 한일합작의 제작 시스템이 향후 “좋은 선례”로 남았으면 한다고.
시놉시스
일본에 사는 보경 아저씨의 밀수를 위해 한달에 서너 번 보트를 타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한국인 청년 형구. 그리고 항상 그를 맞이하는 일본인 청년 토오루. 이들은 가족과 우정 때문에 인생의 행복을 저당잡힌 채 살아간다. 어느 날 보경의 명령으로 지수라는 여자를 일본으로 납치하게 되면서 이 청춘들의 미래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행로를 바꾼다. 평생 지킬 것이 없던 형구는 토오루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지켜야 할 가족을 만나게 되고, 지켜야 할 것투성이었던 토오루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형구를 만나 인생의 자유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