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8 한국영화 신작]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2008-01-10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이혜정

<멋진 하루>는 이윤기 감독이 준비하는 새 영화의 제목이다. 국내에도 출간된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소설 단편집 제목이자 이 책에 실려 있는 첫 번째 작품.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 책의 작품들은 대체로 실생활에서 벌어진 약간의 일탈과 해프닝, 폭소는 아니지만 어딘가 짙은 웃음을 남기는 유머, 알 듯 말 듯한 묘한 깨달음 그리고 바람결처럼 어느새 불어온 다짐의 느낌으로 자주 싸여 있다. 이윤기 감독의 전작 <아주 특별한 손님>도 그 작품들 중 하나인 <애드리브 나이트>를 원작으로 했다. 남성감독임에도 여성 화자의 섬세한 캐릭터와 감수성을 포착해낸다고 평가받아온 이윤기 감독은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그 여자의 묘한 자아찾기의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다이라 아즈코의 세계와 이윤기의 세계 사이에는 다시 한번 접점이 놓인 것이다.

돈이 궁해진 노처녀가 자신에게 돈을 꾸어간 옛 애인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한다. 그러자 그가 자신에게는 갚을 돈이 없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 갚을 텐데 같이 돌아다녀주면 안 되겠냐는 제안을 한다. 여자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동행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손님>처럼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이윤기 감독은 <아주 특별한 손님>과 <멋진 하루>가 많이 다를 것이라고 예고한다. 더 활기차면서도 유쾌한 느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초반부에는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는 느낌에서, 그러나 시작과 상당히 달라져서 되돌아간다는 면에서는 <아주 특별한 손님>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많이 다른 영화가 될 거다. 더 복합적이고 더 독특한 유쾌함이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 그냥 좋더라. 우리가 언제라도 처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고, 게다가 리얼하지 않나. 소설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영화로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연상되는 감정적 코드들이 많이 있었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면서 몇 가지 점들이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일단 이윤기의 세계를 대변해온 여주인공을 누가 할 것인가. 그 역할이 새롭다면 그 새로움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관객인 우리로서도 더이상 바랄 바 없는 결과가 나왔다. 이윤기와 전도연의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결합을 낳았다. “왜 전도연이냐고? 여배우의 아우라를 생각할 때 너무 당연하다. 한편으로는 전도연이 이 영화에 나온다고 할 때, 지금까지 정평이 나 있던 그녀의 모습 외에도 한번 더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런 사연은 있었다. 이윤기 감독이 원작을 보낸 건 <밀양> 촬영 때였고 그때는 “차인 것 같았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끝내 놓고 다시 보냈을 때 전도연의 마음이 움직였다. “다들 내가 칸영화제 다음에 연락한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웃음) 원작자에게 한국 배우 중 누가 이 역할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대번 전도연이라고 하더라.”

이제 그녀를 이상한 여행길에 꼬드길 남자가 누가 될지가 중요해졌다. 배우는 거의 정해졌으며 마지막 조율 중이다. 극중 역할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이 프로젝트의 스탭들은 남자주인공에 관해 “제멋대로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팅커벨”이라고 부른다. “껄렁한 면도 있고 좀 신비롭기도 하고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기도 한,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 소설에도 그런 말이 있다. 행운은 그 녀석과 함께 오고 간다고.” 그러니까 결국 <멋진 하루>에서 그 여자의 행복은 엉터리 같은 그 옛날 애인 녀석을 다시 만나면서부터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될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의 분위기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7∼8명을 만나는데 주인공 남자의 성격상 거의 다 여자다. 원작에서는 아예 전부 여자다. 여자가 이렇게 많은 게 맞는지 고민도 했는데,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다채롭게 상대인물들을 구성하려고 한다. 그리고 조연배우들은 이미 알려진 사람들도 있지만 가능하면 전체적으로 비교적 얼굴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로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계속 5분에서 10분씩 조연들이 나오면서 빠르게 다른 신으로 넘어가는데, 그러니까 주인공들로서는 그들을 대할 때 어색하고 낯선 감정에 있는 건데, 도리어 관객에게 그 배우가 사전에 너무 낯익다면 그것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두 사람의 이번 ‘돈 빌리기’ 여정의 동선이 매우 폭넓고 빠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점이다. “강남과 강북을 종횡무진하겠지. 영화가 굉장히 빠를 거다. 그게 만들 때는 역경이 되겠지만 만들고 나면 장점이 될 거다.” 이제 준비는 막바지다. 1월 중순에 촬영을 시작하여 두달 정도 촬영한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어떤 사람의 미지의 영향력,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복감, 그런 삶의 한 부분을 유쾌한 코드로 이야기하는 영화, 그런 영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건 지금 우리 모두의 같은 생각 아닌가? 이 영화는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날의 기분 좋은 발견에 관해 이 영화는 <멋진 하루>라고 부른다.

나 이거 처음이야

섬세하고 조용한 사람들. 이윤기 감독의 지난 영화에 나왔던 인물들은 대체로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상황이 좀 달라질 모양이다. 아마도 이윤기의 영화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인물들이 나올 모양이다. “인물들이 직선적이다. 굉장히 수다스럽고 적극적이다. 지금까지 내가 묘사했던 인물들과는 거의 정반대다. 심지어 조역들까지 지금까지와 다르다. 원작에 있는 인물들을 그렇게 내가 해석을 한 거고, 그게 또 원작의 장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 점을 최대한 극대화하면 코미디적 요소가 강할 거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거 코미디다, 라고 했을때 연상되는 느낌과는 좀 다르겠지만, 여하튼 <아주 특별한 손님>과 접근하는 코드 자체가 달라질 거다. 장르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것 말고도 또 있다. “30년대 뉴올리언스 재즈풍의 음악을 사용하려고 한다. <푸딩>의 김정범이 곡을 만들고 있다. 그 시대 음악이 주는 약간 낡으면서도 경쾌하고 애잔한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아마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는 잘 나오지 않았을 거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기묘한 느낌과 낡은 느낌을 주다가 나중에는 그 음악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방식이 될 거다.” <멋진 하루>에서 처음 시도되는 이윤기의 변화, 인물의 군상과 음악이다.

시놉시스

1년 전에는 영원할 것 같았던 애인 사이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만 되나. 지금은 헤어져서 남남이다. 희수(전도연)와 병운의 이야기다. 희수는 지금 딱히 가진 것도 없고 믿을 만한 직장도 없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애인일 때 병운에게 빌려줬던 돈 350만원을 받아야겠다고. 지금처럼 돈이 귀할 때 그거라도 어디겠냐는 마음으로 마침내 희수는 병운을 찾아간다. 그는 경마장에서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한량이다. 그런데 만나보니 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어서,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꼭 돈을 돌려주겠으니 같이 다녀달라고 부탁한다. 까짓 거, 준다는데 같이 안 다닐 이유도 없지 않나. 희수와 병운의 야릇한 여정은 그렇게 해서 시작되고, 그들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다. 언뜻 구질구질하게 돈 빌리러 다니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이라 아즈코의 원작과 기본 틀거리가 같다”고 감독은 말했는데, 그렇다면 이 여정의 끝에는 상쾌한 바람 같은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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