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자의 시대는 갔다. 불행히도 그렇다. 장 폴 벨몽도와 알랭 들롱의 비천하고 능글능글한 밑바닥 남자의 매력은 70년대 이후 스크린에서 씨가 말랐다. 제2의 벨몽도나 들롱이 될 뻔했던 배우들? 제대로 싹이 트지도 못했다. 기욤 카네(<비독>)는 에비앙 생수처럼 담백해서 영 재미가 없다. 뱅상 페레(<여왕 마고>)는 영화를 제대로 선택할 줄 모른다. 올리비에 마르티네즈(<언페이스풀>)는 팝스타 카일리 미노그의 결혼 상대로 가십 잡지에나 등장할 따름이다. 카스파 울리(<인게이지먼트>)는 그냥 예쁜 바비인형 같다. 세상이 원하는 건 단정하게 수염(과 가슴털)을 정리한 영미권 남자들뿐이란 말인가. 통곡하고 있을 즈음 로맹 뒤리가 나타났다. 시작은 <스페니쉬 아파트먼트>(2002)였고 절정은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2005)이었다.
뒤리는 자크 오디아르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에서 부동산업자 아빠의 뒤를 이어 채무자들을 두들겨패며 돈을 벌지만 죽은 엄마처럼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꿈꾸는 남자를 연기한다. 우아한 세계를 원하지만 비열한 거리에 발이 묶인 남자. 딱 벨몽도와 들롱의 재현 아닌가. 확실히 로맹 뒤리에게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프랑스적 로망이 있다. 엉킨 머리를 벅벅 긁으며 노천 카페에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우다가 간드러지는 불어로 상처를 내뱉을 법한 남자의 로망 말이다. 문제는 그가 벨몽도나 들롱처럼 프랑스적인 매력을 국제적으로 알릴 만한 야심이 있느냐다. 지난해라면 대답은 “농”(Non)이었을 테지만 올해라면 “위”(Oui)다. 늘 “현대 프랑스 대중영화는 꽝이다. 좋아하는 건 오직 누벨바그영화뿐”이라고 불평해온 그는 크리스토퍼 오노레나 토니 갓리프, 세드릭 클래피시 같은 영화적 동지들과의 협연만을 즐기며 할리우드의 손짓은 단호히 거부해왔다. 하지만 올해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존 말코비치와 함께 스릴러 <그 후에>(Afterwards)를 찍고 있다. 역할은 타인의 죽음을 감지할 수 있는 뉴욕 변호사란다. 대체 무슨 심경으로 이 영화에 출연했냐고? “사르코지 정부의 X같은 문화정책 아래서 영화를 만드는 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니까”가 그의 대답이다. 로맹 뒤리의 미국 진출은 (칼라 브루니와의 결혼을 제외한다면) 사르코지 정부가 창출한 최대의 문화적 수확으로 후대에 기록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