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오디션이 데뷔로 이어졌다면,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다. 뒤가 든든하거나, 연기를 타고났거나, 엄청나게 매력적이거나. 그리고 맨해튼 상류사회의 10대를 훔쳐보는 TV시리즈 <가십 걸> 속 ‘세레나 반 더 우드슨’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그 세 켤레 유리구두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아빠와 오빠 둘, 언니 둘에 형부까지 모두 연기자고, 엄마는 가족의 스케줄을 관리한다나. 그럼 어쩌다 핏줄을 타고 흐르는 끼를 17살이 돼서야 발견했을까? 가족 덕분에 꼬마 라이블리는 촬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손 닿는 것을 욕망하는 건 아이들이 가장 못하는 일 중 하나다. 15살 때 만들어본 장래희망 목록에서도 연기자는 논외였다. 스탠퍼드대 입학을 목표로 했던 모범생이 오디션에 응한 것은 오빠가 애써 준 기회를 망치기 미안했을 뿐이란다. 12살 때 출연한 <샌드맨>이 필모그래피의 전부였던 소녀는 오디션 대기자 중 유일하게 그럴듯한 포트폴리오 없이 빈손이었고 앰버 탬블린, 아메리카 페레라, 알렉시스 브레델 등 젊은 여배우들의 고향이 된 성장영화 <청바지 돌려입기>의 주인공 4명 중 하나로 데뷔했다. 그 뒤 코미디영화 <액셉티드>와 호러물 <사이먼이 말하길>을 거쳐 드라마 <엘비스와 애너벨>까지, 그의 필모는 언뜻 조언자 많은 배우 집안 막내딸이 귀기울인 흔적 같지만 정작 출연작 속 그는 어린 시절 놀이터로 돌아온 듯 신명난다. 무엇보다 그의 연기는 진지하기 이전에 솔직하다. 웃을 때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고, 연모하는 남자들에게 보내는 눈웃음에는 앙큼한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애초에 키다리 금발 미녀에게 공략당한 것은 눈이 아니라 귀였다.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음조와 몽롱하면서도 바스락거리는 음색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사실 생김은 소년에 가깝다. 작지 않은 타원형 얼굴의 중심엔 좁고 오똑한 콧날 대신 잘생긴 그러나 둔한 모양의 코가 자리잡았는데 정돈된 눈썹과 가는 입술이 아니라면 오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복병은, 사람 잡는 미소다. 무표정할 땐 울상인 얼굴이 한번 미소로 환희를 보여줄 수 있다니! A급 이목구비를 골라 심은 인공미에 질려갈 때쯤 만난 시청각적 오아시스다. 라이블리의 자연미에는 균형잡힌 몸과 잘빠진 팔다리도 한몫한다. <가십 걸>에서 즐겨 드러내는 허벅지는 탄력있는(lively) 근육과 지방의 조화를 보여준다. ‘세레나’의 패션센스와 비교하면 98% 부족하지만 라이블리의 발랄한(lively) 매력이 돋보이는 데뷔작 <청바지 돌려입기> 보기를 강추한다. 피팅룸에 들어가는 대신 선 채로 바지를 내리는 ‘브리짓’의 대담함에 당신은 화면을 향해 목을 뺄 것이고, 탱크톱과 조깅팬츠를 입고 백사장을 달리는 모습에 한뼘 당겨 앉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