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이크 웨버] 딱 알맞은 온도의 사려깊음
2008-04-24
글 : 최하나
<고스트 앤 크라임> <새벽의 저주>의 제이크 웨버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결혼이 연애 이상으로 달콤할지도 모른다. <고스트 앤 크라임>의 조 드부아, 제이크 웨버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시시하고도 위험한 망상에 빠져들게 된다. 식탁이 뒤집히도록 악을 쓰고 발을 구르는 세딸들의 난장판 속에서 아침을 챙기고, 머리를 빗겨주며, 하찮은 질문 하나 무시하지 않고 응답해주는 남자.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 자신에겐 “파티”라고 말하는 그에겐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조차 눈부시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속 터지는 우직함이나 비현실적인 선량함이 아닌, 딱 정확히 알맞은 온도의 사려 깊음. 1989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20년차의 배우인데, 제이크 웨버는 필모그래피의 길이에 비례하는 중량을 갖추지는 못했다. <7월4일생>이나 <펠리칸 브리프>처럼 출연장면을 애써 색출해봐야 하는 조·단역이 대다수.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던 <U-571>의 중령은 실전에서는 뒷걸음질을 치는 남자였고, <조 블랙의 사랑>의 자신만만한 듯 보였던 사업가는 어설프게 계략을 꾸미다 수모를 당하며, <새벽의 저주>의 건실한 영업사원은 결정적 순간에 좀비에게 물어뜯겨 홀로 남는 처지가 된다. 치밀하게 무언가를 도모하기에도, 그렇다고 로맨틱한 판타지를 부풀리기에도 웨버는 어딘가 헐렁하고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의 인터뷰 기사는 모래 더미에 흘린 바늘만큼이나 찾기 힘들고, IMDb 게시판은 왜 이 남자를 알아보지 못하냐는 팬들의 성토와 보물을 발견한 집단의 은근한 자부심이 뒤엉켜 넘실댄다. 스포트라이트에서 한 걸음 뒤. 하지만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영리하지 못한 그 속도 때문이다. 도드라져 빛나는 대신 한번 더 기다리고, 한번 더 망설이며, 한번 더 보듬기. 말하자면 제이크 웨버는 신호가 울리는 순간 쌩하고 달려나가기보다는 뒤에 서서 넘어지는 이가 없는지 살피는 사람이다. 영웅이라기보다는 전투가 남긴 잔해를 묵묵히 치우는 사람이다. <새벽의 저주>의 마이클은 피에 굶주린 좀비떼에 뒤쫓기는 와중에도 일행을 떠나보내며 “난 여기서 잠시 머무르며 일출이나 즐길게요”라고 말한다. <고스트 앤 크라임>의 조 드부아는 세파의 전장에서 멍들어 돌아온 아내를 향해 언제나 이렇게 묻는다. “괜찮아? 괜찮은 거지?” 그럴때면 언제나, 그의 구겨진 어깨를 안아주며 대답하고 싶어진다. 괜찮아, 당신이 거기에 그대로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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