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정국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편지>(1997) 연출
최진실은 처음부터 <편지>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베이비 세일>(1997)이 잘 안 되는 바람에 제작사에서 반대를 했었지. 그런데 나는 자꾸 최진실 생각이 나더라. 함께 거론했던 다른 여배우들은 그냥 예쁘고 아름다웠는데, 최진실은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이미지가 멜로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적극 추천했다. 당시 박신양이 떠오르는 신인이었잖나. 그가 촬영할 때는 치열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던 반면 최진실은 무척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아미를 연기했다. 그래서 스탭들끼리 “역시 관록있는 배우”라고들 했다. 그리고 스탭들에게 정말 잘했다. 광릉수목원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나. 쉬는 시간에 스탭들 볼에 일일이 뽀뽀를 해주고 있더라. 그걸 보면서 톱스타인데 이런 면도 있네,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눈물 흘리는 장면을 하루에 몰아서 찍은 건 지금까지 미안하다. 21회차로 마무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날 진실씨는 눈이 아플 때까지 울었다. 그런데 시사회에서는 촬영할 때 운 것보다 더 펑펑 울더라. ‘다른 배우들보다 감수성이 더 예민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편지> 찍을 땐 굉장히 예쁜 동화 속 여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는데, 얼마 전 드라마 <장미빛 인생>에서는 깊이감이 살더라. 그래서 내가 다시 영화를 만든다면 중년이 된 진실씨를 주인공으로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