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KBS PD 김종창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장밋빛 인생>(2005) 연출
처음부터 최진실을 <장밋빛 인생>에 캐스팅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최진실이란 이름만 꺼내도 주변에서 만류하던 분위기가 있었는데,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때 최진실도 공백기를 좀더 가지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이 작품 시놉시스를 보고 재기가 가능한 작품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캐스팅 단계에서 한번 만나게 됐는데 다툼이 생겼다. 일종의 기싸움이었던 것 같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를 캐스팅하기로 생각한 만큼 난 최진실이 기존의 예쁘고 발랄한 이미지를 버리고,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진실 본인은 자신의 배우 경력이 십 몇년인데 이런 오디션 자리를 와야 하느냐며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재차 만나면서 오히려 조율이 쉬웠다. ‘머리를 어떤 식으로 펌했으면 좋겠다’ 같은 내 요구도 다 들어주면서 자신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말했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엄마 옷과 가방들을 가져와 촌스럽게 꾸미더라. 작품 촬영에 들어가고부터는 삶인지 연기인지 모를 정도로 신기가 느껴지는 연기를 매회 보여줬다. 신인처럼 대본을 끼고 살았다. 맹순이가 우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스탭들이 같이 눈물을 흘려 자주 NG가 나기도 했다. 잔머리를 굴리거나 하지 않고 온몸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전에 내가 아는 최진실은 자기가 가진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배우였다. 이 드라마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방영 초반부터 시청률도 잘 나오고 평가가 좋아지니 그 자신도 농담처럼 “내 안티팬 다 어디 갔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통해 KBS 연기대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받고는 “내 인생이 장밋빛 인생 같다”면서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은 두 아이를 갖게 된 것과 이 드라마를 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