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 이태곤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7) 연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드라마 기획 자체가 30대 말에서 40대 초에 있는 아줌마의 자아찾기였다. 꿈이니 연애감정 같은 것을 잃어버릴 나이에 설렘을 던져주자는 것이었다. 기획자들과 나를 포함해 스탭 모두 이구동성으로 꼽은 배우가 최진실이었다. 연락했더니 최진실씨도 너무 좋아했다. 우선 연령대가 적합했고, 그가 <질투>를 통해 트렌디드라마의 시초를 열면서 현대식 신데렐라 스토리/로맨틱코미디에 가장 잘 어울렸던 배우 중 하나였으니까. 결혼해서 아이도 있지만 왕성하게 일하고 있고, 과거가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으니 본인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맞는 부분도 있었고.
최진실씨와는 <그대 그리고 나>(1997)에서 조연출을 할 때 처음 만났다. 딱 10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었는데 변한 게 없었다. 단지 엄마가 됐고, 이혼한 상태였다는 것뿐 여전히 예뻤고 쾌활했고 당당했고, 자신있었고 잔정이 많았다. 일을 하는 태도 역시 여전히 훌륭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배우를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누구나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그는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았고, 촬영장에 항상 제일 먼저 와 있었다. 조명도 켜지지 않은 시간에 나와 대사를 외우고 있었고, 농담을 하다가도 대본에 몰입했다. 주인공이라 대사도 많고 대본도 늦게 나왔는데 그 많은 대사와 설정들을 다 소화했다. NG가 나면 자학을 할 정도로 심하게 열정적이었다. 웬만해선 NG를 내지 않았다. 일단 대사 NG는 거의 안 냈다. 그래서 주변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긴장하기도 했고, 연기라는 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는 걸 많이 배우고 그의 열정을 배웠다는 얘기들을 배우들이 많이 했다.
촬영장에선 서로가 고생하지 않나. <내 생애…>도 밤새워 찍는 날이 많았는데 샌드위치니 삶은 달걀이니 이런 걸 슬쩍슬쩍 주머니에 넣어주고 가곤 했다. 그런 걸 보면 참 귀엽다. 언젠가 겨울에 밤샘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이모에게 부탁해서 닭죽 60인분을 새벽 3시에 싸온 적도 있고. 그리고 드라마 끝날 때쯤 되면 쫑파티 걱정을 제일 먼저 한다. 결국 그런 현장의 분위기가 드라마의 질을 만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깐깐하기로도 소문이 많이 나 있다. 스탭이건 다른 연기자들이 건 제 맘에 안 들면 굉장히 까탈을 부린다고도 얘길 들었다. 그러니까 편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고, 긴장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일종의 완벽주의자.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최진실은 강한 여자다라고만 생각했지 그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었는지는 고려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수많은 루머와 우여곡절들에 당당히 맞서 싸워 이겨낼 거라고만 생각했다. 도와달라는 손길을 수없이 보냈던 것 같은데…. 우리 작가한테도 그렇고, 나한테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그걸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생애…> 시즌2 얘기가 진행 중이었고 시놉시스가 나와서, 원래 오늘(10월7일)이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동갑내기라서 많이 친했는데, 사실은 전화가 와도 잘 안 받고 그랬거든. 또 대본 독촉하는 거겠지 하고…. 가끔 얘기도 나누면 좋았을 것을.
평생 연기자로서 살겠단 얘길 했다. 나중에 늙으면 김혜자씨처럼 되고 싶단 얘기도 했는데, 자기 이미지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걱정도 하더라.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미움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그렇게 좋은 어머니상을 가진 배우가 될 수 있을까 말하더라.
그의 죽음이 단순히 악플 때문이다라고 얘기하는 건 이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가 그에게 빚을 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지금껏 그의 많은 작품들을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받았는데 정작 그가 어려움에 처하고 도움을 청했을 때 우린 무시했거나, 욕을 했거나,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거나 질투를 했거나 그러지 않았나…. 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수많은 고통과 아픔을 그의 주위 사람들 그리고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들어주지 못했다는 게 이번 일의 더 큰 원인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죽음이 남긴 교훈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