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인호
고 최진실과 함께한 작품: <마요네즈>(1999) 연출
첫인상. 깍듯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적으로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예의 바른 사람 있잖나. 지금 생각하면 마음을 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번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하니 그 속도가 엄청났다. 어느 순간부터 속얘기를 많이 하더라. “내겐 20대가 없었다”는 말을 많이 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이끌려 촬영현장에서 20대를 보낸 것에 지친 것 같았다. 오죽하면 “세트장 들어오는 시간이 제일 편하고 좋다”는 말을 했겠나.
진실씨는 어떤 배우가 될 것인지 많이 고민했었다. <마요네즈>도 기존의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에 선택한 작품이었는데, 그러다보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난 연기에 소질이 없다”거나 “김혜자 선생님처럼 타고난 연기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민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런 문제로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항상 진실씨가 누군가의 발판에 의해 널뛰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김혜자 선생님이 널뛰기를 하시는 영화니 좋은 발판이 되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김혜자 선생님과는 진짜 모녀지간처럼 지냈는데, 진실씨가 선생님께 연기를 배우려고 많이 노력했다. 톱스타여서 스케줄이 빡빡했는데도 “연기를 잘하려면 영화를 위해 스케줄 비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일정을 조정하려고 노력했었고.
촬영장에서 가끔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표정이 밝아지며 아주 즐거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제가 꼭 받아야 할 전화가 한 군데 있는데 그 전화는 촬영 중에도 꼭 받고 싶다”고 얘기를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분이 조성민씨였던 것 같다. 결혼한 스탭들에게 “결혼하면 어때요, 좋은가요?” 물어보곤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1년 뒤에 진실씨가 결혼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결혼식 때 보고 한동안 연락을 못했는데 지금은 많이 아쉽다. 이상하게도 진실씨 가기 하루 전날 <마요네즈> 사진을 다시 보고 싶어 꺼내 봤었는데 그 다음날 소식을 들었다. 열흘만 사진을 먼저 보고 연락을 해서 목소리라도 들었다면, 그랬다면 내 마음이 더 편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