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나를 믿는다
2014-01-28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천우희

영화 <카트>(2014) <우아한 거짓말>(2014) <한공주>(2013) <써니>(2011) <이파네마 소년>(2010) <사이에서>(2009) <마더>(2009) <신부수업>(2004)

드라마 <뱀파이어 아이돌>(2011)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2010)

천우희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나긋나긋 실어나르는 말에는 느긋한 여유가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난 잘될 거야! 잘될 거라고 응원하고 염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어떻게 안 될 수가 있겠어?” 이런 무한 긍정의 사고와 태평스러움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어져온 천우희의 기질이다. “친구따라” 연극반에 들었는데 연극제에서 상을 받고, 상받고 나니 “나 좀 잘하는데” 싶어 대학(경기대학교 연극학과)에서도 연기공부를 하기로 하고, 대학 재학 중 오디션 봐서 <마더>에 진구 상대역으로 출연하고,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작품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역할을 맡으며 천우희는 연기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다. 배우로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갈망보다 자신의 연기에 확신을 새기는 작업이 우선이었다. 그랬기에 <써니>의 불량학생 상미(=본드걸)로 카메라 앞에 설 때까지도 그녀는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했다. “내가 괜찮은 배우라면, 정말 원석이라면 누군가 먼저 연락해올 거라 믿었다.”

<써니> 이후 천우희에겐 소속사가 생겼다. 한 영화를 오롯이 책임지는 주인공 자리에도 앉게 되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 무비꼴라쥬상과 시민평론가상을 받은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에서 천우희는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한공주를 연기했다.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워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다”던 <한공주>의 시나리오. “책을 읽자마자 ‘이거, 내 거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수영하는 공주, 노래하는 공주, 도망치는 공주, 외톨이 공주…. 공주의, 아니 천우희의 여러 얼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랜 잔상을 남긴다. <한공주> 이후 천우희는 이내 교복을 바꿔 입고 <우아한 거짓말>의 만지(고아성) 친구 미란이 되었다. “씩씩하고 밝고 온화한 성격”의 인물은 실로 오랜만이라고. 올해 1월부턴 대형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비정규직으로. 물론 영화 <카트>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배우에게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던 천우희는 지금 자기 앞에 놓인 계단을 한칸 한칸 욕심부리지 않고 밟아가고 있는 중이다.

Q&A

1. 첫 촬영의 기억은? 2. 앞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을 꼽는다면? 3. 뺏어오고 싶은 캐릭터는? 4. 가상 수상 소감. 5. 20년 뒤 오늘 당신은 무얼 하고 있을까?

1. 17살 때였나. <신부수업>에 불량학생으로 잠깐 출연했다. 대사도 없이 불량학생 중 한명으로 서 있는 거였는데, 현장에서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는데 (머리를 감싸쥐며)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더라. 2. 어제 새벽에 <김씨표류기>를 봤다. 영화가 재기발랄하고 재밌더라. 지금 딱 떠오르는 사람은 그래서 이해준 감독님. 3. <레옹>의 마틸다(내털리 포트먼)는 나이 먹어서 안 될 것 같고, <라비앙 로즈>의 에디트 피아프! 젊은 배우가 나이 든 인물로 분장해 연기하면 어색하고 티가 나기 마련인데, 마리온 코티아르의 연기는 최고였다. 4.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버텨줘서 고맙다. 열심히 했어.” 아, 근데 이 상 안 받고 싶다. 부담된다. 받아도 한참 뒤에 받으면 안 되려나? 5. 48살. 2034년 1월6일에도 이렇게 앉아서 인터뷰했음 좋겠다. “다음 작품은 뭔가요?” 물으면 “48살인데 액션영화 찍어요”라고 답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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