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피해갈 수 있는 게 아니다. J. J. 에이브럼스가 떡밥의 제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매번 그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고 마는 건 어찌된 노릇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는 떡밥으로 관객을 속이려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떡밥이 (어떨 땐 메인 요리보다) 너무 맛있다. 카메라를 대할 때 J. J. 에이브럼스는 영화 세계에 뛰어든 장난꾸러기 같다. 그는 관객을 속이기 위해 카메라 트릭을 쓴다기보다는 카메라를 가지고 놀면서 이 장난감으로 할 수 있는 것,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을 궁리한다.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게 관찰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자전적 이야기랄 수 있는 <슈퍼 에이트> 속 아이들처럼 에이브럼스는 8살 때부터 카메라를 가지고 놀며 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슈퍼 에이트’인 이유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선물받은 슈퍼8mm 카메라에서 따온 것처럼, 카메라는 그때부터 에이브럼스의 분신이 되었다.
떡밥의 성전 <로스트>의 수많은 복선이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것은 그것이 철두철미하게 설계된 이야기의 선로 위에 놓여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드라마 속 에피소드들은 때론 즉흥적으로 끼워넣은 게 아닌지 의심될만큼 엉성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에이브럼스가 그 사연들을 카메라에 담는 방식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믿도록 만든다. 현장감이라 해도 좋고 리얼리티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에이브럼스 스스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모르는 관객처럼 군다는 점이다. 에이브럼스의 시선은 카메라 렌즈 앞 상황의 설계자라기보다는 카메라 렌즈 뒤 시선에 매혹된 관찰자에 가깝다. 그의 심장이 뛸 때 관객의 심장이 뛰고,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은 관객도 보지 못한다. 요컨대 에이브럼스 영화는 찍은 만큼 보이고, 찍으면서 점점 더 넓어지는 모험의 세계다.
따라서 J. J. 에이브럼스 영화에 카메라를 찍는 행위가,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클로버필드>의 제작을 맡으며 페이크 다큐 형식을 선택한 것은 어린 시절 찍었던 괴수영화의 규모를 키워 시도한 재미난 장난이 아닐까. <클로버필드>는 어린 시절 8mm카메라영화제에 함께 참여한 친구 맷 리브스가 감독을 맡았다. 두 사람은 이 영화에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심정을 담기로 결심한다. 블록버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 대신 작은 캠코더 화면에 담긴 사실감에 더 끌린 것이다. 시종일관 흔들리고 제한된 시선은 ‘카메라를 통해 본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색다른 현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카메라를 끼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생생함. 에이브럼스 영화에 유독 렌즈 플레어 효과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8mm, 16mm, 디지털 등 종류에 관계없이 그는 카메라와 함께하는 ‘놀이’와 사랑에 빠졌다.
사물이 감독에게
오랜 친구에게. 8살 생일 때 처음 만난 이후 우리처럼 죽이 잘 맞는 콤비도 없을 거야. 항상 나를 아껴줘서 고마워. 그런데 요즘 한 가지 걱정이 생겼어. 이번에 네가 먼 미래의 우주로 간다는 이야길 들었어.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스타워즈> 시리즈를 맡게 된 걸 축하해. 섬에서 길을 잃거나 괴물이 도시를 덮칠 때도 네가 나를 챙겨준 것처럼 이번 여행도 우리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사물 퀴즈 05
<슈퍼 에이트>에서 작은 시골 마을의 아이들은 기차역 앞에서 8mm 카메라를 들고 단편영화를 찍다가 때마침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를 목격하고 사건에 휘말린다. 이때 아이들이 찍고 있던 영화가 <슈퍼 에이트> 본편이 끝난 뒤 소개되는데 이게 의외로 재미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이 완성해낸, 조지 로메로 영화를 오마주한 이 6분짜리 좀비영화의 제목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