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움직이는 감정의 밀실
2014-04-08
글 :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자동차
<사랑에 빠진 것처럼>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세번 놀랐던 순간이 있다. 그 첫째는 영화의 초반부 장면에서 역 앞에서 손녀를 기다리는(듯한) 할머니 주변을 회전하는 택시의 운동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고다르는 남자와 여자와 자동차가 있으면 영화가 성립한다, 고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젊은 여자와 할아버지(할머니)와 자동차만으로 영화를 성립시켰다. 두 번째 장면은 할아버지 타카시가 차에서 잠깐 잠들었다 깨어나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관객이 그러하듯 나도 잠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세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 갑작스레 날아온 돌에 타카시 집의 유리창이 깨지는 순간이다. 만약 창문이 그의 영화에서 스크린의 비유라면 그것이 깨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이 세번의 경이로운 순간이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 주요한 사물인 자동차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자동차는 무엇보다 영화적 운동의 원초적인 등가물이다. 자동차는 중단 없이 진행되는 사건에의 매혹, 즉 영화의 매혹에 적합하다. 키아로스타미 영화에서 삶은 그런 전진하는 (자동차의) 움직임에 따른 활력과 시간=시각(표상)으로 표현된다.

<체리 향기>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며 자살의 뒤처리를 부탁하던 주인공이 결국 깨닫는 것은 삶의 진실이 죽음의 종착역으로 향하는 과정의 움직임에 있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서로 다른 공간 사이를 통과해가는 여정이다. 키아로스타미는 그런 삶의 움직임을 지그재그의 운동선으로 형상화했다. 이는 원경촬영으로 포착된 아이이거나 자동차의 운동선이다. 전진의 움직임은 우회해 매번 방향과 중심을 바꾸어 가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형상이다. 자동차는 인물 내면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자동차는 운송수단이자 지각의 수단이며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여행자의 응시가 삶에, 운동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가령 <텐>에서 키아로스타미는 두대의 카메라를 운전석과 조수석 앞에 부착해 촬영하면서, 영화 전체의 내용을 단지 자동차 안에서만 벌어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사로 구성했다. 자동차는 여기서 몸이 편안하게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 자동차의 폐쇄적이고 닫힌 공간성이 도리어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주고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는 고해성사를 가능케 한다(일종의 소파 상담(Couch Therapy)의 장소).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콜걸인 아키코는 자동차 안에서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다. 자동차는 이때 그녀의 은밀한 내면의 전용극장이다. 이렇듯 키아로스타미의 최근의 영화들에서 자동차가 여성에게 중요장소가 되었음을 인지하기란 쉽다. 항해자로서의 여성은 폐쇄적인 작은 장소인 자동차 안에서(움직이는 밀실) 도리어 감정의 해방을 맛본다. 집을 갖지 않은 그녀들은(최소한 그녀들의 집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정의 고착성에서 벗어나 일시적인 거주의 장소인 자동차 안에서 편안함을 맛본다. 자동차는 폐쇄와 소유에서 벗어나 표류할 수 있는 이동하는 집을 그녀들에게 선사한다. 아키코는 택시 안에서 달콤한 잠에 든다. 차 안에 있는 것은 영화관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체리 향기>

사물이 감독에게

한국에도 자동차는 많고 돌아볼 만한 곳도 많습니다.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역이나 도쿄뿐만이 아닌 서울에서도 자동차의 영화를 만들어주세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촬영보다 우리는 당신의 촬영을 더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물 퀴즈 02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주인공 아키코를 태운 택시는 도쿄의 신주쿠에서 출발해 타카시가 있는 요코하마로 향하는데, 그녀의 요청으로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는 도쿄역 앞의 로터리를 우회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차가 동상 앞을 회전하는 역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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