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코미디가 세계의 관객을 기쁘게 한 데는 세명의 발군의 배우, 곧 찰리 채플린, 해럴드 로이드, 버스터 키튼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전부 영화 초창기에 한롤(roll)짜리 짧은 영화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은 뒤, 1920년대 장편영화를 통해 스타가 됐다. 거의 동시대에 활약했기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개성을 계발하는 노력도 그런 경쟁 과정에서 나왔다.
이들 세 배우의 공통점은 슬랩스틱인데, 거의 곡예사 수준의 기량들을 갖고 있다. 채플린의 코믹한 몸동작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로이드와 키튼은 스턴트맨들도 하기 힘든 고난도의 동작들을 능숙하게 해내곤 했다. 로이드는 <마침내 안전!>(1923)에서 보듯 손에 땀이 바짝바짝 나는 서스펜스 곡예를 잘했다. 너무 오래 고층건물의 시계에 매달려 있어서, 심장 약한 관객이라면 중간에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다. 반면에 키튼은 더욱 역동적이다. 넘어지고 자빠지는데, 그것이 서커스의 곡예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곡예라는 점에서 두 배우는 겹쳐 보인다.
채플린보다 몇년 후배인 두 배우는 유사점을 넘어서는 특별한 개성을 찾아야 했다. 두 사람 모두 한롤짜리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개성을 계발한다. 먼저 로이드는 그 유명한 ‘검은 뿔테 안경’을 쓴다. 소심한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주로 도시에서 성공하길 원하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간혹 이기적인 남자로 나오는데, 그런 이미지를 위해 안경을 썼다고 밝혔다. 당시 콤비 감독이던 할 로치의 제안을 수용했다. 로치에 따르면 로이드는 소심한 남자라는 캐릭터와 달리 시원한 인상의 ‘핸섬 보이’였다. 그래서 안경을 쓴 근시의 남자로 탈바꿈시켰다. 눈앞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지나치게 열심히 몰두하는 로이드의 페르소나는 근시들이 끼는 뿔테 안경을 통해 각인됐다. 말하자면 로이드는 개성을 위해 안경의 이미지를 빌렸다.
버스터 키튼의 이름 ‘버스터’(Buster)는 예명이다. 부상이 걱정될 정도로 넘어지고 떨어지는(buster) 동작을 잘해서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코미디 배우인 부모와 함께 무대에 서며 아동학대로 고발될 정도로 위험한 묘기를 선보였다. 늘 부상이 염려될 수준이었다. 성인이 된 뒤, 그 ‘버스터’에 어울리는 소품을 하나 고안해냈는데, 그것이 멀쩡한 모자를 팍 누른(buster) 그만의 유명한 ‘납작모자’이다. 모자는 인기가 높아, 팬들은 종종 그 모자를 뺏어 달아나기도 했다. 대표작 <제너럴>(1927)에서 보듯 키튼은 외형이 망가진 모자처럼 늘 넘어지고 떨어져서 아찔할 정도로 망가진다. 그러고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게 일어서는 게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개성을 드러낸 납작모자는 키튼의 분신인 셈이다.
채플린도 키튼처럼 유랑극단 출신이고, 부모 모두 배우였다. 하지만 가족은 너무 가난하여 굶기를 말 그대로 밥 먹듯 했다(<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그런 경험 없이 <황금광 시대>(1925)에서 구두를 삶아 먹는 장면을 그렇게 절실하게 연기하기는 어려웠을 테다. 채플린의 유명한 복장도 이런 가난의 경험에서 나왔다. 채플린의 연미복, 정장 모자, 지팡이는 신사의 상징들이다. 물론 그에게는 역설로 기능한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채플린은 이미 어릴 때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옷에 민감한 점을 진작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부랑자인 주제에 연미복을 입은 신사를 흉내냈다. 남들에게 가난을 감추고 싶어서다. 자기만 빼고 우리 모두는 그가 거지라는 점을 다 아는데 말이다. 그런 역설에서 채플린 코미디의 비극성이 빛난다. 채플린의 옷 자체가 비극적 코미디인 그의 영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