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일제강점기 기숙학교의 비밀
2015-02-24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해영 감독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출연 엄지원, 박보영, 박소담 / 제작 청년필름(주) /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개봉 상반기

Synopsis 1938년 경성. 우등생은 도쿄로 진학시켜준다는 보상 아래 학생들은 학교 규율에 순종하며 지내는 한 기숙학교. 어느 날부터 소녀들이 흔적도 없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교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고, 교장은 여전히 우수학생 선발에만 힘쓴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 이곳으로 전학 온 병약한 소녀 주란(박보영).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녀는 이곳에 자신과 똑같은 이름의 소녀가 있다가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된다. 학교를 지배하는 교장(엄지원), 그리고 사라진 아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주란은 점점 이 학교가 숨기고 있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그 실체에 다가가게 된다.

<페스티발>(2010) 이후 4년 만의 연출이다. 충무로의 스토리텔러 이해영 감독이 주목한 곳은 1938년 일제강점기 경성의 한 요양기숙학교다. 철저한 규율 아래 존재하는 소녀들의 공간. 병약한 소녀 주란(박보영)의 등장으로 학교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하나둘 사라지는 소녀들, 그 비밀을 간직한 교장의 존재를 주란의 시선으로 좇아간다. 100% 극화된 설정이지만 시대의 억압 아래 위험에 노출된 약자인 소녀들의 이야기는 실화보다 더 실화 같다. 드라마, 미스터리, 호러,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변주라는 점에서 이해영 감독의 새로운 스타일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현재 후반작업 중이며, 상반기 개봉예정이다.

-병약한 소녀가 낯선 환경(학교)에 놓이고, 자신의 내면을 흔들 사건을 만나게 된다. 성장영화의 틀을 갖췄다.

=주란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의 이미지를 많이 참조했다. 염력이 있다는 건 아니고. (웃음) 주눅들어 있던 아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각성하고 폭주한다는 게 기본 스토리라인이다. 초반이 소녀적인 드라마라면, 전반적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가다가 중반에는 호러 같은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액션이 가미되면서 시시각각 장르가 뒤섞인다. 주란의 성장만큼이나 학교가 가진 느낌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주란이 목격하게 되는 학교의 비밀이 관건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와 연결된 사건이라고 짐작이 간다.

=주란이 찾고자 하는 미스터리의 핵심이라 지금 단계에서 밝히기는 어렵다. 물론 그 시대라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 모티브가 된다. 실화가 아니라서 이게 과연 말이 될까를 두고서 겁도 나고 고민도 많았는데, 최종적으로 너무 얽매이지는 말자라는 쪽으로 결정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와 공포, 어떤 분위기를 염두에 두었나.

=대부분 수용소 같은 분위기를 연상하는데 난 기숙학교에 예쁜 소녀들이 있는 화사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피터 위어가 연출한 <행잉록에서의 소풍>(1975,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학생들이 소풍 도중 사라진다는 내용의 미스터리물)을 보면 미스터리한 사건에 비해 소녀들을 묘사하는 장면은 더없이 아름답다. 순백의 잠옷 같은 것도 인상적이고. 그런 이미지를 많이 떠올렸다.

-학교의 미스터리함을 지배하는 교장의 역할이 크다. 젊은 여성으로 그린 건 어떤 의도였나.

=교장의 등장이 처음엔 좀 마녀 같은 느낌이라면, 젊고 아름답고 성숙하며 지식을 갖춘 신여성, 당시 학생들이 보기에는 선망의 대상에 가깝다. 사실 등장인물이 다 여자이다 보니 어떤 투자사에서는 한명만이라도 젊은 남자로 해달라는 말도 들었다. (웃음) 이 구조 안에 남자가 등장하면 필요 이상의 섹슈얼리티가 가미돼버린다. 특히 권력자인 교장이 남자라면 너무 위험한 구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남자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보였다.

-1930년대 경성의 재현이라는 과제는 어떻게 풀어나갔나.

=30년대는 많이 봤지만, 정작 많이 못 본 느낌의 시대라고 할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워낙 많이 나와서 변별력이 떨어지는 게 함정이었다. 고증의 한계에 갇히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주 무대가 되는 학교가 특히 중요했다. 진짜 30년대로 가려다 보니 너무 불쌍해 보이는 미술이 되더라. 영화적으로 볼거리를 줄 수 있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완성된 학교는 유럽의 오래된 학교의 느낌에 가깝다. 전경은 CG로 만들었고, 실내는 복도 신을 제외하고 대부분 대전 세트에서 촬영했다. 내부의 몇몇 공간으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데 답답하지 않게 변화를 주는 게 관건이었다. 어려운 과제였는데, 적어도 비주얼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요구는 여배우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 지점에서의 해소도 기대된다.

=‘공포’로만 오해하고 의외로 네거티브한 반응이 컸다. ‘피 묻히는 건 안 돼’ 이런 금기가 여배우들에게는 여전히 크다. 여배우들이 할 역할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한편으로는 용기를 좀더 내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다. 엄지원 같은 경우 그동안 단아한 이미지를 주로 소화했다면, 이번 작품을 통해 상당히 다른 면을 보게 될 거다. 이렇게 다른 지점을 잘 포착하는 배우인데 그동안 왜 활용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1930년대의 억압된 학교가 지금 시대와 가지는 접점은 무엇인가.

=결국 교장의 캐릭터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보다 30년대의 소녀들은 시대적인 환경 때문에 더 나약할 수밖에 없다. 주도권이 없는 미성숙한 소녀들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는 기성세대의 문제다. 그 방법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교장의 역할이고, 바로 동시대적인 관점에서 읽힐 수 있는 지점이다.

-<페스티발> 이후 4년 만의 연출 신작이다. 그간의 변화도 반영된 작품으로 기대가 크다.

=음악을 한 달파란 감독이 이번 작품을 두고 “영화 화법이 달라졌어요”라고 하더라. 사실 <천하장사 마돈나>(2006)나 <페스티발>은 영화적인 것보다 내 취향을 바탕으로 한 접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좀더 영화적인 것,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앞서더라. 영화 장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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