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피바람 속에 핀 사랑
2015-02-24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순수의 시대> 안상훈 감독

<순수의 시대>

출연 신하균, 장혁, 강한나, 강하늘 / 제작 (주)화인웍스, (주)키메이커 / 배급 CJ엔터테인먼트 / 개봉 3월

Synopsis 1398년, 태조 이성계는 제 손에 피를 묻혀 개국을 일군 왕자 이방원(장혁)이 아닌 막내아들을 정도전의 비호하에 세자로 책봉함으써 왕좌를 둘러싼 핏빛 싸움의 서막이 시작된다. 왕이 될 수 없었던 왕자 이방원, 여진족 어미 소생으로 정도전의 개로 불린 민재(신하균) 그리고 그의 친자가 아니라는 비밀 속에 쾌락만을 좇는 부마 진(강하늘)의 관계가 얽혀 조선의 앞날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민재는 어미를 닮은 모습의 기녀 가희(강한나)에게서 난생처음 지키고 싶은 것을 발견한다. 하지만 사랑이라 믿었던 가희는 어릴 적 억울하게 어머니를 잃은 후 복수를 위해 그에게 접근했을 뿐이었다.

<블라인드>(2011)로 짜임새 있는 연출을 선보인 안상훈 감독이 이번엔 조선 개국 초기의 혼란의 시대를 파헤친다. <순수의 시대>는 조선의 왕좌,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핏빛 욕망이 폭발한 ‘왕자의 난’을 바탕으로, 그 속에 피어난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색, 계>(2007)와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분위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는 기존 사극의 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의 욕망을 역동적으로 드러낼 예정이다. 복잡다단한 스토리라인, 캐릭터들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감정선, 높은 표현 수위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작품. 지난여름 촬영장에서 무더위와 싸우던 안상훈 감독은, 이제 편집실에서 마지막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왕좌를 둘러싼 모략이 끊이지 않던 조선 초, ‘왕자의 난’으로 이야기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시대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조선시대라고 하면 기존에 보아온 정적이고 질서정연한 이미지가 있는데 나는 좀 달리 생각했다. 음모, 협잡, 음해가 가장 난무한 시기가 고려 말 조선 초였다. 그런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담아낸다면 묘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인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별화된 감정이 보일 것 같았다. 예쁜 꽃이 깨끗한 화분에 있는 것과 더러운 못에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기존 사극에 전자의 느낌이 강하다면, 난 좀 더러운 못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인물들 모두가 내부적으로도 각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복잡다단한 캐릭터들을 한데 엮어나가는 데 해법이 필요했을 것 같다.

=기존 상업영화는 주로 주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한달음에 달려가는 분위기였다. 관객이 쉽게 호응할 지점을 마련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식상하더라. 고전영화들을 보면 다채로운 캐릭터가 존재하고 그들을 엮어가는 서사를 구사한다. 그 지점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인물들과 시대의 모습을 하나로 잡아주는 축이 필요했다.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선 남자와 여자의 감정이다. 흔히 사랑을 통해서 발생하는 서로의 교감이 아니라 만나면서 시작되는 감정의 변화다.

-이방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허구의 인물이다.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어떤 면에 주목했나.

=이성계의 다섯 아들 중 한명, 칼쓰는 집안의 칼쓰는 자식들 사이에서 그는 유일한 문과 급제자다.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와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울 때 그는 무예를 익히는 한편으로 학문에 전념했다. 지략과 모략의 귀재였다. <삼국지>의 조조 같은 캐릭터다. 당시 정도전을 처단할 때 그의 나이가 불과 24살이었을 정도로 위기의 순간 큰 결정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캐릭터다. 그런 인재였지만 개국하는 데 공을 세우고도 태조에게 보상받지 못했다. 냉혹한 이면에 있는 아버지의 사랑, 보상심리와 인정욕구, 그 복잡한 내면을 그리고 싶었다.

-시대 구현의 도구로 ‘섹스’와 ‘폭력’을 활용했다. 기획단계부터 ‘청소년 관람불가’를 목표로 했는데 어떤 의도인가.

=영화에서 보여주려 했던 것 중 하나가 계급사회의 잔혹성이었다. 그러다보니 계급의 폭력과 그 안에서의 섹스나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게 되더라. 섹스 장면은 너무 리얼하게 가면 야동이 되니 최대한 영화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려 했다. 안무가가 퍼포먼스 디렉터로 참여해서 구성했다. 가희를 연기한 강한나의 역할이 컸다. 부담스러운 장면도 많았는데, 신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노련한, 천생 배우였다. 액션 장면은 컷을 길게 가져가면서 최대한 리얼함을 살리려고 했다. 배우들이 거의 100% 소화해야 하는 액션이었는데, 무술감독들이 신하균 선배 칭찬을 많이 하더라. 이렇게 빨리 몸으로 체화하는 배우는 처음 봤다더라. 기획단계에서 떠올린 게 <색, 계>와 미드 <스파르타쿠스>를 다 가져가자는 거였다. 그런 과욕을 한번 부려봤다. (웃음)

-고려 말과 조선 초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색감과 미술의 방향은 무엇이었나.

=당시는 촛불도 없이 호롱불로 불을 밝히던 시대다. 그런 어두운 시대의 이미지를 살려주려고 했다. 조사해보니 당시가 그렇게 깨끗한 시대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거리를 복원했더니 골목골목 인분이 그렇게 많이 나왔다는 자료를 접했다. 기존 사극의 화려한 미술은 가급적 배제하고 이들이 살아가는 잿빛 현실이 묻어날 수 있게 조명에 특히 신경쓰고, 채도도 많이 뺐다.

-혼돈의 시대를 오늘의 시대에 적용시켜보는 것, 결국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였다. 요즘 사랑은 ‘어떠어떠하기 때문에’로 귀결된다. 그런 이유들이 배제된다면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상황이 자연스러워진 시대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게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 아닐까. 이 사랑이 가진 감정의 끝을 파헤쳐봐도 이유가 없는 사랑. 나를 사랑했던 여자의 마음이 다 거짓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끝, 순수한 사랑일 수 있겠더라. 옛날 방식의 사랑이라고 외면당할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선택이지만 그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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