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범죄와 서글픔
2015-12-15
글 : 김현수
사진 : 오계옥
송시우

<응답하라 1988>의 스릴러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영화화 제의가 쇄도했던 송시우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 평론가 수빈이 칼럼 연재를 위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추리소설이다. 그때 그 시절, 다가구주택의 안방과 건넌방, 별채 등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을 찾아나선 수빈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은 때론 섬뜩하고 선정적이면서도 애잔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이 소설을 주목한 이유도 뚜렷한 배경 설정과 ‘범죄 동기’가 분명하고도 다양한 캐릭터 등 장르소설의 기초공사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셜록 홈스’와 ‘뤼팽’을 마스터하고 중학생 때 이미 국내 출간된 모든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은 작가 송시우는 더이상 읽을 소설이 없어 방황하다가 PC통신 시대를 맞이하여 ‘추리동’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사실 그 이후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본 추리소설이 쏟아져 들어오고 미국, 영국뿐만 아니라 북유럽 추리소설까지 발간되기 시작하니까 왠지 나도 써보고 싶었다. (웃음)”

그녀는 2008년 첫 단편소설인 <좋은 친구>로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사랑합니다, 고객님> 두편의 단편을 발표, 2012년에는 단편 <아이의 뼈>로 한국추리작가협회 황금펜상을 수상했다. “애초 열심히 쓰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자꾸만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년 꾸준하게 단편소설을 발표했지만 경찰이나 탐정 등의 업무에 관한 지식이 없어 소설의 주인공을 일반인으로 설정하고, 또한 그들이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전개로 쓰다 보니 종종 ‘장르색이 약하다’는 지적도 받곤 했다. “장르적 쾌감이 잘 드러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문체도 자꾸 톤이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에 대한 욕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인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로 편입해 공부까지 하는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의 시점에 대해서도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장편소설 집필 중에 깨닫고는 “1인칭 시점으로 썼던 초고 전체를 3인칭 시점으로 일일이 고쳤다. 그랬더니 처음부터 3인칭으로 썼어야 됐더라. (웃음) 1인칭 시점은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점이 있는데 그러기엔 수빈이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캐릭터의 비중과 매력이 적었다. 3인칭으로 고치니까 주인공 없이 다른 인물의 상황도 보여줄 수 있어 에피소드가 다양해졌다.” 현재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시나리오 초안까지 나온 상태다. “나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시나리오작가가 원작을 최대한 살려주려 많이 노력한 것 같다.” 소설 집필 당시 그녀는 영화 <써니>,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등 유행처럼 번지던 복고 열풍을 바라보면서 소설의 구상을 시작했다. “한국적인 감성과 배경을 장르소설에 담고 싶다. 범죄를 둘러싸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사회적 메시지도 있으면서 작품 분위기에서 독자들에게 안타까움이나 서글픔을 안겨주고 싶다”는 것이 장르소설가로서 송시우의 큰 목표라 할 수 있다.

몇달 전 송시우 작가는 작가로서의 목표의 연장선에 있는 또 한권의 장편소설, <달리는 조사관>을 발표했다.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가상의 준사법기관 조직에서 조사관으로 일하는 주인공들이 셜록 홈스 수준의 추리 능력을 발휘하며 누군가의 인권 침해 사례를 파헤치는 이야기로,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라는 기발표작을 개작하면서 연작소설 형태로 꾸린 소설이다. 그 안에는 사건의 추리 과정에서 생겨나는 장르적 재미뿐만 아니라 ‘민간인 불법사찰’,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의 첨예한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소재와 결말로 독자들을 생각에 젖게 만든다. 게다가 깜짝 놀랄 정도로 해박한 법률 지식이 쏟아져 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국가인권위원회’ 주무관으로 일하고 있다. 일과 소설을 구분지어야 할 것 같아 필명으로 활동 중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외국 걸작에 익숙한 독자들의 수준을 맞추려면 장르소설 집필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 논리 안에서 지금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차기작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영화판 <라일락 붉게 피던 집>도 빨리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위험한 독신녀>

내 인생의 영화

<위험한 독신녀>

송시우 작가는 “인생의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난색을 표했다. “요새는 영화를 잘 안 챙겨보게 된다”면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중학생 때에 비디오 가게에 가서 자주 빌려봤던 리처드 기어와 킴 베이싱어 주연의 <최종분석>, 브리지트 폰다 주연의 <위험한 독신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양들의 침묵> 같은 스릴러영화들이 떠오른다고 꼽아줬다. 물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서 취향 덕분에 찾아본 영화들일 것이다. 범죄에 연루되어 사건을 해결하거나 혹은 타락하고 마는 여성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들과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씨네 21> pick

<아이의 뼈>

범죄에 희생된 유가족이 갖는 슬픔, 상실감은 송시우 작가가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는 소재다. “만약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육체가 없다면? 그렇다면 범죄를 수사하는 국가는 피해자 가족을 위해 시신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그녀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소설이 바로 <아이의 뼈>다. 작가의 시선은 물론 유족을 향해 있지만 살인자의 심리에까지 닿고자 하는 예술적 야심은 장편 <달리는 조사관>에 실린 단편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에서 이어진다. 작가는 이 소재로 장편을 쓸 계획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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