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위로의 운명
2015-12-15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조해진

‘타자의 소설.’ 조해진의 첫 번째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코드 중 하나’를 그렇게 말해뒀다. 에이즈에 감염된 여자(<그리고, 일주일>), 시력을 잃은 연극배우와 죄지은 것 없이 전과자가 돼버린 남자(<기념사진>), 한국 남자와 결혼한 뒤 버림받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여자(<인터뷰>), 거인병에 걸린 여자와 사랑하는 남자의 침묵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까지(<여자에게 길을 묻다>, 2004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한 등단작).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내쳐졌거나 존재하되 그 존재감이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사람들이다. 뿌리 없이 부유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조해진 소설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많이 아파하고, 누구보다 먼저 상대방의 아픔을 감지한다. 조해진은 “결핍된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운명”이라고 담담히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 충만함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보다는 세상의 결여와 마음의 가난이 만든 그늘 아래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보내는 작가의 대답이다.

“‘타자의 소설’이라는 평론가의 말이 되레 내게 화두를 던져줬다. 그저 나는 썼을 뿐인데. 그렇게 고민이 시작됐다. ‘타자는 누구인가, 나는 왜 계속해서 공동체 안에서 그 존재를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가려진 사람들에 대해서 쓰고 있나.’” 그때 조해진은 무작정 아는 이 하나 없는 폴란드로 떠났다. 등단은 했지만 청탁도 없고, 책을 내보자는 제안도 없던 때였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한국어 강사 일을 하다 기회가 닿았다. 폴란드 포즈난에서 한국어 강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나라는 사람이 그 어떤 곳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방인처럼. 우리는 국적 밖 세계로 나가면 이처럼 언제든 불안전한 존재가 된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 내가 속해 있는 경계 밖으로 언제든 벗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그때 탈북자에 관한 기사를 우연히 접했고 장편 <로기완을 만났다>를 써내려갔다.” 북한에서 벨기에로 밀입국한 청년 로기완과 그를 무작정 쫓아가보는 방송작가의 이야기가 교직한다. 영화화가 진행 중인 작가의 첫 소설이기도 하다. “느닷없이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라는 분이 메일로 책에 대한 감상문을 보내왔더라. 이 소설을 어떻게 읽게 됐고, 어떤 식으로 읽었으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었다. (웃음) 독자가 많은 소설가가 아닌 내게 애정을 가져준 흔치 않은 경우다. 그 마음이 읽혀 시나리오 작업 때 힘껏 돕고 싶다고 했다.” 폴란드에서의 경험은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졌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녀온 작가는 “잠자는 곳 바로 옆이 가스실이고 침대 맡이 총살장이다. 생과 사의 최소한의 경계조차 없는 공간,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도해야 하는 구조다. 더없이 비참했다”고 전했다. 단편 <빛의 호위>는 그렇게 탄생했다.

조해진 소설은 장면이나 공간이 이야기의 출발점이 될 때가 있다. 특히나 사람이 없거나 떠나간 텅 빈 악기점이나 가구점, 자동차 판매 대리점이 대표적이다. “밤에 혼자 산책하길 즐긴다. 그때마다 불 꺼진 빈 상점들을 보면 상상한다. ‘악기점 안에서 누군가 연주를 하고 있진 않을까, 가구점에 누군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소설을 쓸 때 하나의 장면부터 먼저 떠올리고 이야기를 붙여나간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나가는 게 흥미롭다.” 인기척 없는 빈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은 마치 사회적 타자들, 소수자들에게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는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처럼 보인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인가 빈 공간에 들어선 낯선 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열기가 전해진다. 그것이 조해진 소설이 지향하는 “위로”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게 위로다. 나는 스스로에게 후하지 않은 편이다. 늘 ‘나라는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며 괴로워한다. 그런데 소설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잠시 그런 생각을 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봐도 좋겠다는 힘까지 얻으면서. 소설이 내게 주는 위로다. 그런 위로가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가닿길 바란다.”

서른 즈음 등단한 이후 12년이 흘렀다. “거짓 없이 말할 수 있다. 30대를 지나오면서 열심히 쓰고 또 썼음을. 그런데 조금은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올여름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를 내고 석달 정도 의도적으로 글쓰기와 거리를 두고 있다. 작가로서 내 세계를 넓히는 도약이 필요하다. 많이 쓰기보다는 더 많이 읽고 생각하려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소설을 쓰는 자로 남기 위하여, 작가는 잠시 숨을 고른다. 다행히 휴지기는 길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는 작가의 단편집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긴 호흡의 역사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미더운 고백을 전해왔다.

<애정만세>

내 인생의 영화

<애정만세>

“영화광은 절대 못 되지만….” 수줍게 손사래부터 치지만 조해진은 동네 산책길에 한국영상자료원에 들러 영화를 보거나 낙원상가 시절부터 서울아트시네마를 종종 찾았던 기억을 풀어냈다. 최근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89)를 보고 “역사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불을 지폈다. 인생의 영화를 꼽아달라고 하자, 차이밍량의 <애정만세>(1994)부터 말한다. “인물들이 빈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그 공간을 채워나가는 이야기다.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도 어쩌면 그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마지막에 메이(양귀매)가 공원으로 가 6분여간 우는 롱테이크 장면은 충격적이고도 아름답다.” 단절된 인물들의 고독을 그린 영화가 조해진의 소설과 딱 맞게 포개진다.

<씨네 21> pick

단편 <빛의 호위>

화자인 나는 분쟁 지역에서 보도사진을 찍는다는 권은을 만난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이야기가 교차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헬게 한센의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유대인으로서 팔레스타인 난민 지역에 구호품을 전달하던 중 사망한 노먼 마이어에 대해 말한다. 나는 두 이야기를 오가며 기억을 더듬는다. 권은의 카메라가 포착한 빛, 나치 치하에서 불 켜진 악기 상점에서 새나오던 빛이 주는 온기가 있다. 작가는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는 순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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