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찾아
2015-12-15
글 : 김현수
사진 : 백종헌
한유주

“아이의 이름은 미아다. 혹은 민아이거나, 미나이거나, 민하일 수도 있고, 아미이거나, 유미이거나, 윤미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아이는 미아라고 불리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의 이름을, 미아라고 생각한다.” 한유주의 첫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그녀의 소설은 대부분 화자가 마치 결정장애라도 있는 듯 자신의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언어를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고르고 있고, 그 고민의 흔적을 모두 활자로 옮겨 펼쳐놓은 것 같다. 게다가 뚜렷한 ‘이야기’ 없이 진행되고, 종종 말장난처럼 반복, 변주되는 표현들과 주어 없는 문장의 주인을 찾아가며 읽어야 할 때도 있다. 명확한 사건이 없는 소설, 혹은 작가 자신의 표현처럼 “수다스러운” 소설들에 대해 우찬제 평론가는 “일단 읽힌다면, 현존 세상과 인간, 말과 이야기 문화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서사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썼다. 그도 오죽했으면 ‘일단 읽힌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을까. 물론 그녀는 이런 독자들의 반응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데뷔 초에는 다들 나보고 오래 못 쓸 거라 했단다. 그래서 두 번째 단편을 발표했더니 그 뒤로는 단편집을 못 낼 거라 했단다. 장편도 불가능할 거라고들 했다던데, 나는 ‘이런 것도 소설이냐?’는 반응에 ‘아닌데? 이것도 소설인데?’라는 심정으로 썼던 것 같다.”

대학 시절 수업 과제로 썼던 단편 <달로>가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한유주는 3권의 소설집 <달로> <유령의 책>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를 냈고 2009년에는 단편 <막>으로 제42회 한국일보문학상도 수상했다. 생계 유지를 위해서 틈틈이 강단에도 서고 해외 서적 번역 작업도 하면서 2013년에는 드디어 첫 장편 <불가능한 동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소설을 쓸 때 제목부터 정하고 문장을 써내려가는 그녀는 첫 장편의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이 많았다. “작품마다 반복적으로 쓴다고 여겨질 정도로 ‘불가능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생각한다’는 동사도 참 많이 쓰는데 어쩌면 장편에 임하는 내 태도가 제목에 투영된 것 같다.” 정확히 무엇을 쓰고 있는지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글을 쓰고 있지만, 그녀는 장편에서만큼은 유년기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등단 후 10년이 지난 시기가 스스로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이제는 십대 시절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최근에 쓴 단편 <일곱 명의 동명이인들과 각자의 순간들>에서는 국민연금관리공단과의 다툼, 이십대 시절 홍대 인근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경험을 비교적 선명한 문장을 사용해 묘사한다. 불분명한 화자를 통해서 가장 또렷한 감정과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고심했던 그녀에게 찾아온 작은 변화라면 변화일까.

이처럼 그녀의 ‘다른’ 글쓰기 시도는 소설 밖으로도 확장된다. 한글 워드 프로그램의 네모난 창을 벗어나 새로운 탬플릿에서 새로운 주제로 종이 지면을 채우는 디자인 작업을 엮어낸 책 <16시-작가를 위한 워드프로세서 스타일 가이드>는 글쓰기라는 물리적인 행위의 변형 혹은 확장이며, 또한 그녀는 2012년부터 송승언 시인, 뮤지션 이랑 등 마음 맞는 동료 예닐곱명과 함께 ‘울리포프레스’라는 독립출판사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고독한 작업실 생활자인 소설가에서 발행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기도 했다. 2013년 시인 자끄 드뉘망(소설가 김태용의 필명)의 시집 <뿔바지>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이준규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7>과 자끄 드뉘망의 시집 <자연사>를 출간했다. “소설의 본문 폰트도 결정해본 적 없었던” 그녀가 기획부터 제작,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사 결정을 담당하고 있다. “독립출판물 시장이 조금씩 성장 중이다.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같은 시장의 가능성과 파급력에 놀라기도 한다. 새로운 독자를 찾아나서는 또 다른 활로가 되지 않을까?” 어린 나이에 등단하긴 했지만 삶의 경험치로 따지자면 그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한유주는 “오래 살아야 더 좋은 글도 많이 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녀가 쓴 상당수의 작품에서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진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반응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살면서 더 찾고 또 쓰고 싶은 건 뭘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모든 것들의 부분들, 또 거기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 이름이 있다면 나는 소설을 안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까지는 점진적으로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러한 이름을 찾아나간 결과를 소설로 쓰고 싶다.” 역시 난해하고 불가능한 것을 좇고 있는 듯 보이지만, 왠지 한유주라면 그에 맞는 표현을 찾아내 그것으로 기어이 한편의 소설을 엮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리바이어던>

내 인생의 영화

<리바이어던>

그녀는 2007년 <씨네21> ‘내 인생의 영화’ 칼럼(608호)에 기타노 다케시의 <돌스>를 꼽으며 “사랑에 관한 가장 잔인하고도 이기적인 영화”라고 했다. 2015년의 그녀는 이 영화를 다시 꼽지는 않았고 최근에 봤다던 <리바이어던>을 이야기한다. “영화를 볼 때는 직업인의 자세로 보게 된다. 각각의 장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는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을 봤는데 뭔가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소설 같은 영화였다. 러시아의 풍광을 담은 영상도 참 좋았다.”

<씨네 21> pick

<불가능한 동화>

한 아이의 가족사와 일상의 경험, 그리고 같은 반 친구인 ‘미아’와 얽히게 되는 충격적인 결말까지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진 그녀의 첫 장편소설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가가 극중 화자인 작가를 설정해놓고 그 작가와 주인공을 극중에서 대면시키는 희한한 인칭 전략을 구사한다.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켜보려고 애를 썼던 게이 소설이다. 막연하지만 좀더 정교하게 내용과 형식이 일치되는 소설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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