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한국영화 1. 밤의 해변에서 혼자
어느 영화에서 이 정도로 ‘홍상수’를 솔직하게 본 적이 있었던가. “이유야 어찌됐든 홍상수의 진심이 이만큼 드러난 영화는 없었다”(우혜경)라는 말처럼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르러 비로소 홍상수의 진심을 발견하고, 이를 홍상수 영화의 일대 변화로 인지 하기 시작했다. “치정과 욕망의 그림자를 좇던 홍상수 필모그래피의 일대 변화. 부조리극의 난해함으로 형언되지 않은 심리의 깊이를 얻었다”(조재휘)라는 말과 더불어 많은 평자들이 주목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지는 고백적인 서사다. “모든 매료된 것에 솔직하고 아름답게 반응하는 영화. 그 솔직함이 끝내 그 처절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이지현), “홍상수의 변화. 관찰의 영화에서 고백의 영화로”(이주현), “끝내 탄복해버린 진심의 무게”(김소희) 등 진심의 항변이 결국 이 영화를 가치 있게 한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판타지에 가까운 극적 장치를 활용한 형식적인 지점에 대한 평가도 잇따랐다. 독일 함부르크와 한국 강릉. 그 길을 유부남과 헤어진 이후 걸으며 사색하고 고뇌하고 번민하는 영희의 현실. 그리고 그녀가 맞닥뜨리는 환상의 체험 등은 영희의 내면, 나아가 감독 홍상수의 고민을 반영하고 발산한 것처럼 읽힌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이렇게 아름답게 무너지고 교차하는 영화가 또 있었나”(김현수), “영화와 현실의 간극. 이쪽과 저쪽. 옮겨오는 작업에 대해. 말 바깥의 영화. 영화언어 안쪽의 영화”(송경원) 등의 평에서도 볼 수 있듯이 1부와 2부로 나뉜 형식적인 장치가 내면의 혼란을 반영함으로써 영화적인 리듬감을 창출해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혹적인 지점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영희가 누울 때, 노래를 흥얼거릴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 모두가 독자적인 영화가 된다”(김혜리)는 평처럼 김민희라는 배우와의 만남 이후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보여주는 결과치는 흥미롭고 또 아름답게 변주 중이다.
올해의 한국영화 2. 남한산성
산성만큼 높디높았던 작가 김훈이라는 원작의 절대성. 이를 스크린에 옮기려는 황동혁 감독의 도전은 과감했으나 그 방법은 쟁취를 위한 전투가 아니었다. 영화의 톤과 꼭 닮은 방법론이다. “원작 소설을 이기려 들지 않을 때 영화가 더 빛날 수 있다는 배움”(우혜경), “김훈에게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영화적 언어로 잘 풀어냈다”(김태훈) 등 원작을 향한 정도를 지킨 영화적 완성도에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패배한 역사를 상상의 승리나 피학적 자아도취를 끌어들이지 않고 서술한 드문 성취”(김혜리), “들끓지 않는다. 혁신적인 화면도, 도전도 없다. 다만 단점도 그리 보이지 않는다”(송경원)는 말처럼 극적 장치에 연연하지 않는 서사의 결도 호평을 받은 지점이다. “각본, 촬영 모두 한국 상업영화의 품격을 높여주었다”(이주현), “남한산성의 찬 공기를 업고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배틀”(이화정), “역사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두 배우의 훌륭한 연기”(이지현) 등 완성도 있는 프로덕션과 배우들의 관록 있는 연기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올해의 한국영화 3.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지난 10년 넘게 ‘코리안 누아르’ 장르가 분화해나가는 가운데 맞닥뜨린 의미심장한 변곡점이자 한국영화의 아주 신박한 일탈”(주성철),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필름누아르”(이현경) 등 누아르 장르에서 이 영화가 주는 반가움은 크다. 그 평가는 완성도보다 앞서는 영화적인 결기에 가닿았다. 상당수의 평자들이 이 영화를 1위의 자리에 올린 것도, 주저 없이 돌진하는 감독의 영화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클리셰적인 모든 것을 피하지 않고 대담하게 밀어붙이는 뚝심. 자유롭고 거침없고 에너제틱하며, 그래서 올해 본 그 어떤 영화보다 흥미롭다”(이화정), “영화의 구멍과 아쉬운 점까지, 감독 스스로만큼은 진심으로 멋지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아서 예쁘다”(송경원)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특히 설경구-임시완이 형성한 감정적 파고가 마음을 흔든 지점. “사랑함으로 파멸되는 감정의 질곡을 퀴어 멜로의 서사 안에서 설득력 있게 담아내다”(황진미), “브로맨스라는 오래된 기만에 종말을 고하는 기념비적 멜로영화”(임수연) 등의 평가도 주를 이루었다.
올해의 한국영화 4. 꿈의 제인
<꿈의 제인>은 잠을 깨고도 잔상이 남는 꿈처럼, 영화적 온기가 지속되는 아주 독특한 영화다. “올해 가장 머릿속에 오래 남았던 한국영화”(듀나)라는 평처럼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냉정함과 객관적’인 시선보다 일종의 ‘매료’라는 언어와 결부된다. “독특한 시간 배열로 관객을 한참 동안 생각하게 만든다”(한창호), “꿈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는 영화가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메타영화라고 생각된다”(박지훈)는 평처럼 형식적인 시도가 돋보이며, 그에 머물지 않고 “우리 시대의 현실과 아픔을 영화적인 언어로 고민하고 성찰한 흔적이 돋보이는 영화다”(김태훈), “가출청소년팸과 트랜스젠더의 소재를 감상적이나 자극적으로 엮는 대신 이들을 소재로 더 큰 세계를 그려 보이는”(듀나) 등의 평에서와 같이 주제의 측면에서도 곱씹어볼 영화적 만족을 안겨준다.
올해의 한국영화 5. 아이 캔 스피크
<아이 캔 스피크>는 평가보다 지지와 응원의 말을 보태게 만드는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를 가여운 희생자가 아닌 용감한 증언자로 그리며, 주체의 성장과 도약을 담아냈다”(황진미)는 말처럼 먼저 제작의 의미가 크다. 물론 그 도전은 단순히 영화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대중영화로서 모든 불리한 여건들(여주인공 영화, 위안부 소재 영화)을 어떻게 돌파할지를 보여준 아주 흥미로운 사례”(주성철)라는 말은 이 영화가 약점을 딛고 대중과 조우한 지점을 평가해준다. 특히 주제의식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소외된 지점을 돌아보는 제작방식도 평가할 만한 지점. “위안부 문제를 조명하는 이 영화의 태도와 캐스팅, 캐릭터의 활용 방식 모두가 지금의 한국영화 제작에 부족한 것들, 귀감이 되는 것들”(이화정), “남자없이도 잘만 살아가는 여성 캐릭터들이 과격한 남성 캐릭터 없이도 좋기만 한 영화를 잘도 이끌어간다”(송형국)고 말한다. “안정감에 여유, 위트와 재기발랄한 면모로 김현석의 최고작”(김태훈), “김현석 감독 특유의 밀고 당기는 스타일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소”(주성철)라는 연출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