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한국영화 1위 <버닝>
한국영화에서 ‘논쟁적’이라는 표현은 사라진 지 꽤 오래됐지만 <버닝>을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은 차갑게 식은 한국영화 한복판에 새삼 불씨를 지폈다. 호평 일색인 해외 반응과 달리 국내 평단과 관객은 <버닝>에 대한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는데, 기성세대의 잣대로 젊은 세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부터 미국 신인 독립영화감독들이 만든 영화보다 못하다는 다소 공격적인 평가도 나왔다. 어쩌면 찬사 일색이 아니라는 점이 도리어 현시점 이 영화의 가치를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긴 침묵을 깨고 돌아온 이창동 감독은 “모두 망각했거나 자본의 간섭에 겁을 먹고 퇴각해버린, 이야기 자체를 대담하게 실험한 드물고 귀한 시도”(김영진)를 했고, 그 결과 요 몇년간 경색된 한국영화라는 껍질에 균열을 낼 만한 자극을 남겼다. <버닝>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다. 작가의 시선에서 현 세대와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몸짓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와 윌리엄 포크너를 차용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모던 시네마로 도약한 듯한 <버닝>을 통해 이창동은 인과율적 서사라는 오랜 관습이 ‘지금의 미스터리한 현실’을 재현하는 데 과연 유효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안시환) 무엇보다 작가라는 미명하에 스스로 온실 속에 격리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시대와 조응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마찰음이 소중하다. 영화에 대한 가혹하고 모욕적인 반응들까지 포함하여 <버닝>은 2018년 한국영화의 하나의 지표로서 기록될 만하다. 동시에 우리는 아직 이 영화에 대해 충분히, 그리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몇수를 앞서갔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나는 이 영화를 언어로 옮기려다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송형국)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정사>(1960)가 등장했을 때 야유가 쏟아졌다고 한다. 안개 속에 갇힌 영화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해 나는 허무하다. 게다가 아직 누구의 글도 이 영화의 근처에 가지 못한 것도 슬픔이다. 한 몇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낼 것 같다.”(이용철) 평자들의 고백처럼 당분간 <버닝>을 계속 되돌아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올해의 한국영화 2위 <살아남은 아이>
올해 한국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2가지만 꼽으라면 애도, 그리고 독립영화다. 상업영화가 관성과 타성에 젖어 지지부진한 가운데 새로운 싹이 움트고 있다. 그 교차점에 <살아남은 아이>가 있다. <살아남은 아이>는 “<밀양>(2007)처럼 자식을 잃은 부모의 억울함과 울분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관습적 과장 없이 사실적인 깊이를 통해 캐릭터를 그려낸다”.(듀나)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은 지난 2년간 한국 독립영화를 사로잡고 있는 주제”(김혜리)이기도 한데 슬프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지 몇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은 듯하다. “포스트 세월호 시대 한국인의 내면 깊은 곳”(송형국)까지 자맥질하는 이 영화는 “애도의 과정과 그것이 도달하는 마지막 명제를, 인물을 앞지르지 않는 태도로 충실하게 주시한”다.(김혜리) 그렇게 “소재에 발목 잡히지 않는, 찬찬한 호흡”(이화정)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아픔을 하나로 규정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이주현) 태도야말로 공감과 사유의 폭을 넓히는 비결이다. “강력한 레퍼런스 영화들을 어느덧 잊게 만드는, 감독의 집중력과 세심함”(김소미)으로 기억될 올해의 새로운 발견이다.
올해의 한국영화 3위 <1987>
“걸작이다. 시대의 공기를 담아내는 촬영에서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얼른 다시 보고 싶다.”(김현수) <1987>은 <씨네21> 기자들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 상위권에 올랐다. 걸작, 시대 등의 표현을 듣고 있으면 다소 과장된 수사가 아닌가 싶다가도 선정의 변을 읽고 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영화는 “역사를 영화로 재현할 때 범하기 쉬운 우를 피해가고, 인물이 적재적소에서 활약한 끝에 전체 퍼즐을 아름답게 완성한다”.(이주현) “수많은 캐릭터가 각자 살아남기 위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듯하다가 결국 각자의 선택에 의해 광장으로 수렴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역사가 돌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한 플롯의 구성이 탁월하다.”(김현수) “민주화운동을 영화화한 작품 중 가장 교과서에 가까운” 이번 영화를 통해 “부분으로 시작해 점점 이야기의 스케일을 확장해나가는 장준환 감독의 연출이 어떤 경지에 올랐다”(장영엽)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1987>은 “1987년 5월의 시위 현장으로 2018년의 관객을 데려가, 공유하게 하는 경험”(이화정)을 제공한다. 영화가 시대를 재현하고, 시대를 기억하며, 시대를 대변한다는 건 이런 것이다.
올해의 한국영화 4위 <풀잎들>
“점점 더 단순하고 신비로워진다.”(김소미) 모호한 단어들의 조합이지만 이런 추상의 언어 외에 홍상수의 영화를 표현할 방법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홍상수의 세계에 진솔하게 맞닿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화면에 직접 그리고 즉각 드러나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아래층과 위층, 살아 있는 자와 사라진 자를 오가며 추론되어야 한다. 유령을 감추며, 이를 감지하게 하는 글쓰기의 방식을 지닌 영화”(이지현)이기 때문이다. 홍상수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한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익숙한 듯 새롭게 대상을 응시하는 <풀잎들>은 “사랑과 죽음에 관한 매섭고도 사랑스러운 관찰기”(홍은미)다. “곳곳에서 환기되는 누군가의 죽음이 표면에 떠 있는 세속적인 이미지들에 새로운 층위를 부여하는”(김소미)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또 한번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감정적 면면들이 어느새 서로 유희하고 결별하는 경이로운 순간들”(홍은미)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하여 별것 없는 것, 시시한 것, 흔한 것을 맑게 바라보는 시선에 관객으로서도 있는 힘껏 진실하게 반응하고 싶어지는 영화다.
올해의 한국영화 5위 <공동정범>
“다큐멘터리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아무도 말하지 못할 때, 그래도 영화는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이다.”(홍은애)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걸음을 옮기는 <공동정범>은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을 오랜 시간 경청하는 것의 윤리가 무엇인지 숙고할 수 있게 한다”.(허남웅) “시대와 권력의 합작이 빚어낸 자본의 욕망이 힘없는 이들의 연대를 어떤 방식으로 망가뜨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김현수)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아직 유효한 질문을 잊지 않고 끈질기게 하는 용기”(이화정)다. <공동정범>은 이 점을 잊지 않고 무엇을 말할 것인가만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걸 일깨운다. “<두 개의 문>(2012)이 제 역할을 못하는 언론사를 고개 숙이게 했다면, 이 영화는 취재가 뭔지 안다고 착각하는 기자에게 죽비를 내리친다”(송형국)는 선정의 변은 그래서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왜 카메라를 드는지, 어떻게 ‘영화적으로’ 문제제기할 것인지에 대해 너무도 잘 아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은 기록과 고발과 선동,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만든다.”(이주현) 그들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