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는 21세기를 짊어지는 거장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부산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다. 10월10일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열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영 및 스페셜 토크는 개막 전부터 화제였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도쿄 근방의 한 산골을 배경으로 삼는다. 글램핑장 건설을 위해 찾아온 도시 남녀가 마을 주민과 겪는 일련의 소동극이다. 일견 소품처럼 보이는 이야기다. 그러나 긴 대화로 직조하는 세계의 견고함, 그 세계를 단번에 뒤엎는 충격의 파장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단연 선두에 설 만하다. 관객들의 절절한 사랑 고백에 감독은 작품의 러닝타임보다 긴 토크로 화답했다. 그 일부를 요약해 전한다.
- 영화의 기획 배경은.
= 애초 라이브 공연의 퍼포먼스 영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음악감독이었던 에이코 이시바시의 제안이었다. 처음 하는 도전이었기에 1년 가까이 고민했고, 결국 극영화를 찍어 그 일부를 사용하기로 했다. 극장 개봉 목적은 전혀 없었는데 촬영 당시에 마주한 배우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너무도 매력적이었기에 영화로 만들게 됐다. 본래 목적의 공연용 영상은 <기프트>(Gift)란 제목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한다.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연출 방식에 전작과 차이가 있었는지.
= 여러 차례 대본 리딩과 액션을 반복하여 연습하는 제작 과정은 비슷했다. 배우들이 몸으로 느끼는 캐릭터의 정보량은 제작진의 그것보다 월등하게 많다. 특별한 디렉팅 없이도 ‘이 인물은 이렇게 움직이겠구나’라며 자발적으로 연기하는 순간이 생긴다. 찍는 사람은 그런 집중력 최고조의 순간을 어떻게 포착할지 고심할 뿐이다. 그렇기에 촬영 현장에서의 감정과 대사, 신체적 반응은 거의 우연의 산물이다.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그 수많은 우연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 자연, 인물, 카메라의 관계와 거리감을 어떻게 설정했나. 사람과 숲을 한 프레임에 담은 도입부의 트래킹숏이 인상적이었다.
= 나는 이번 영화에서 인간이 보는 자연을 그대로 담으려 했다. 인간의 눈과 가까운 40mm 렌즈를 주로 사용했다. 언급한 트래킹숏은 음악에 영상을 조응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에이코 이시바시 감독의 음악에서는 여러 악기의 소리가 층층이 쌓인다. 그 소리들의 관계가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많은 감흥을 부른다. 트래킹숏도 마찬가지다. 전경과 후경에 있는 사람, 자연의 거리감이 실시간으로 변하면서 다각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 차량 뒤에 카메라를 설치해 시선의 주체가 없는 숏을 구현한 이유는.
= 솔직하게 말하면… 난 그동안 어떤 영화에서도 시점숏을 찍은 적이 없다. 카메라는 누군가의 시선을 대신할 수 없다. 카메라는 촬영 장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다만 이번엔 아예 대놓고 인물의 시선이 부재한 카메라의 시선을 내세웠다. 이건 내가 점점 관객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가 진짜인 척하지 않고 외려 그것이 영화임을 내세움으로써 관객과 더 잘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