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딸에 대하여>는 실로 ‘영화적’이다.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빼어난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언어로 번역할 수 있을지에 대한 훌륭한 모범 사례라고 해도 좋겠다. 표면적으론 엄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딸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지만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엄마에 대해’ 알게 되는 거울 같은 영화다.
-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주변에서 한번 읽어보라는 추천을 많이 받았고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참이 지나 <딸에 대하여>의 영화 연출을 제안받았을 때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워낙 잘 짜인 이야기였기 때문에 거꾸로 영화화했을 때 얼마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무엇보다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된 이야기 속에 영화로만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필요했고 마침내 발견해 용기를 냈다.
- 소설에 비해 이야기와 사건은 간소화된 대신 상황과 정황은 더 뚜렷해졌다.
= 소설을 영화화하는 모델을 꼽자면 이창동 감독님인데, 그분은 원작을 해체해서 비판적인 작업을 하시지만 나는 그럴 깜냥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원작을 충실히 옮기되 이것이 반드시 영화여야만 하는 순간들을 빚어내고 싶었다. 원작은 엄마가 딸 그린(임세미)과 동성 연인 레인(하윤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전개되는데 내게 이 작품은 딸보다는 ‘엄마에 대하여’로 다가왔다. 소설 속 내면 독백을 시청각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구체화된 정황을 만들고자 했다.
- 허진 배우에게 ‘여자 나홍진’이란 말을 듣기도 했다던데.
= <곡성> 현장을 경험하신 허진 배우님이라 할 수 있었던 농담 같은 표현인데. (웃음) 명확하게 원하는 그림이 있는 편이고 그게 포착될 때까지 여러 테이크를 찍어서 그런 것 같다. 한번만 더 찍으면 정말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으니까. (웃음) 관철해야 하는 이미지와 리듬이 있다.
- 정은이 늙고 병든 제희를 살뜰하게 돌보는 건 마치 자신을 돌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정은이 왜 저렇게까지 제희를 돌볼까. 단지 연민이나 이타심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그 행동들이 엄마의 불안처럼 보였다. 딸을 향한 엄마의 불안이 외부로 번지는 거다. 정은의 헌신적인 행동은 어쩌면 누군가를, 특히 딸을 이해하고 싶은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김혜진 작가의 말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 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 한줄이야말로 이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향해 지속적으로 다가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을 담는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도 떠오른다.
= <걸어도 걸어도>(2008)를 종종 떠올린 건 맞다. 다만 대안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관계와 연결에 대한 어떤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 딸, 엄마, 나아가 모든 세대의 이야기로 다가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