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염증을 느낀 20대 청년 계나(고아성)가 뉴질랜드로 터전을 옮긴다. 계나가 겪는 한국의 익숙한 폐단과 뉴질랜드의 생경한 활기는 곧장 관객의 피부에 닿을 만큼 생생하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한국이 싫어서>는 2016년 부산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선정되고 8년이 흐른 뒤 개막작으로 부산을 찾았다.
- 원작을 영화화한 계기는 무엇인가.
= 한국 사회를 향한 계나의 피로감에 공감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가 한국 사회의 커다란 변곡점이었다고 느낀다. 큰 재난을 마주한 사람들이 본인의 사회적 위치, 정체성 그리고 산적한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며 각성한 시점이었다. 나도 비슷했다. 원작을 접한 2015년에 한창 두살배기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에게 어떤 것을 남겨줄 수 있을지,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많이 고민하게 되더라. 이런 고민과 계나의 이야기가 많이 연결된다고 느꼈다.
- 초기 단편 <학교 다녀왔습니다>, 장편 <회오리 바람> <잠 못 드는 밤> 등 그간의 작업에서 감독의 실제 삶을 작품에 많이 투영했었다. 정체성이 아주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듬으려 한 과정은 어땠나.
= 2015년쯤 강의를 자주 나갔다. 당시의 시류가 젊은 학생들에게도 큰 자극과 변화를 줬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20대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데… 8년이나 걸린 바람에 내가 40대 중반을 넘겨버렸다. (웃음) 한국에 사는 기혼 중년 남성이 한국을 떠난 20대 후반 싱글 여성의 삶을 대변하기에 적절한지 고민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의 객관성과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고아성 배우나 다른 젊은 배우들, 스탭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했다.
- <한국이 싫어서>로 말하고 싶은 핵심은.
= 이건 계나가 자신을 옭아매는 어떤 올가미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다. 도망의 목적이 무엇인지, 종착점이 어디인지까지는 영화도 나도 아직 결론을 못 내렸다. 계나가 그 탈출의 과정에서 여러 타인과 관계를 맺고 조금씩 자신의 변화를 감지하는 과정일 뿐이다. 성장이라면 성장일 수 있겠다. 그러니 목표가 뚜렷하고 직관적이었던 원작의 계나와 달리 고아성의 계나는 조금 더 유보적인 인물로 변했다. 그리고 계나의 삶과 모험을 아픔으로만 그리고 싶진 않았다. 타국에서의 고생을 시련의 포르노처럼 다루려 하지 않았다. 사는 곳의 변화가 어떻게 마음의 변화로 이어지는지, 그 이동의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다.
- <한여름의 판타지아> 때는 해외 로케이션의 제한된 환경으로 인해 즉흥적으로 선택한 촬영 구도가 많았다. 이번엔 어땠나. 옷 가게 장면에서 거울을 이용한 스리숏 등도 현장에서의 판단이었는지.
= 그렇다. 섭외한 가게 내부가 워낙 좁다 보니 그런 카메라 위치를 자연스럽게 잡았던 것 같다. 콘티도 대부분 현장에서 짜는 편이다. 현장에서 결정하는 일의 90% 이상은 실용적인 선택이다. 컷의 수, 인물 블로킹 유무 등 최소한의 주문만 넘겨주면 나희석 촬영감독이 알아서 구도를 잡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