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동춘(박나은)은 궁금하다. 왜 수학과 영어와 페르시아어와 논술과 미술과 창의과학과 한국사를 배워야 하는지. 동춘에게 답을 준 건 엄마도 선생님도 아닌 막걸리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SF적인 상상력으로 사교육 문제를 풀어낸 귀엽고 기발하면서도 서늘한 영화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o난감> 각본을 쓰기도 한 김다민 감독은 왕성한 호기심과 친근한 상상력, 예리한 관찰력으로 개성 넘치면서도 탄탄한 첫 장편영화를 완성시켰다.
- 제목부터 소재까지 독특하다. 어떻게 시작된 상상력인지.
= 주민센터나 평생학습관에서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해서 자주 간다. 한번은 전통주 만들기 수업이 있었는데 막걸리를 집에서 숙성시키다보니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게 참 신기해 보였다. 센터를 가려면 매일 낮시간에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다보면 학생들이 부지런히 학원 버스를 타고 사라진다. 그렇게 매일 학원을 가야 하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다 문득 막걸리랑 연결되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썼고 2019년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에 당선됐다.
- 동춘 역의 박나은의 존재감이 영화의 팔할 이상이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둥글둥글 귀엽다.
= 동춘 역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연기를 잘하는 친구도 많고 예쁜 친구들도 많았지만 좀처럼 딱 맞는 이미지가 없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매니지먼트 프로필 사이에서 인연처럼 발견한 친구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든 멍한 표정이 중요했다. 영화에서 대사가 많지 않고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어야 했다.
-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처럼 동화 같지만 이면에 서늘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 원래 염두에 두었던 건 <빌리 엘리어트>(2001)나 <미스 리틀 선샤인>(2006)처럼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을 꼬집는 우화 같은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가기 쉽지 않은 면이 있었고 차라리 장르적인 상상력을 더 키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사교육에 대한 현실을 꼬집기는 하지만 그걸 강하게 호소할 생각은 없었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있어서 오히려 밝고 비현실적으로, 때때로 만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뻔뻔하게 가고 싶었다.
- 때로 제약과 한계가 오히려 좋은 작품을 이끌어내는 조건이 되기도 하는데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뻔뻔함이 그런 파괴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 부디 그렇게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밤 촬영이 많은데 아이들이 밤 촬영을 힘들어해서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한창 활발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건전지가 다 된 것처럼 뚝 끊어진다. (웃음) 제작 여건상 컷을 많이 가져갈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만큼은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SF, 판타지적인 상상력은 완충작용을 위한 장치이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뻔뻔함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었다. 해학, 풍자, SF, 다크 판타지, 어떻게 받아들여도 좋다. 재미있게 즐기고 그 끝에 작은 질문 하나를 남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