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케이블·위성TV의 힘 [2] - 리얼리티 쇼 (1)
2004-03-19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서바이버>부터 <베첼러>까지, 전세계 방송을 휩쓸고 있는 리얼리티 쇼

자본주의의 규격화된 감성을 팔아라

리얼리티(reality)+쇼(show)라니, 참으로 기묘한 단어의 조합이다. 쇼라는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형태의 오락인데 현실이 쇼라면 대체 그걸 주관하는 건 누구란 말인가? 답은 간단하다. 쇼의 주관은 방송사, 리얼리티를 제공하는 자는 참여하는 일반인이다. 그 둘의 조합인 리얼리티 쇼를 즐기는 이는 물론 시청자다. 리얼리티 쇼는 미국이 원조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1999년, 네덜란드에서 TV제작자 존 데 몰에 의해 <빅 브러더>라는 이름으로 탄생되었다.

‘빅 브러더’는 열명의 젊은 남녀를 한 장소에 두고, 일정기간(100일) 동안 시청자들이 TV 혹은 인터넷으로- 28개의 감시카메라를 통해 24시간 가동되는-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고 탈락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한마디로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예견한 절대권력의 통제자 ‘빅 브러라더’가 시청자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 발생한 리얼리티 쇼의 수순도 대개 이런 식이다. 상금을 미끼로 여러 명의 출연자를 모으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연출하여 하나씩 탈락시키는 것이다. 물론 최후까지 남는 출연자에게는 상금과 동시에 스타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다. 왜? 오랫동안 지켜본 탓에 시청자들은 이미 그에게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이다. 간혹 최후의 승자를 포함하여 출연자 전원이 스타가 되기도 한다. 방송사를 포함한 각종 언론매체들이 지속적으로 그들의 일상을 공개하고 이슈화하는 덕분이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제작사는 베스트 장면들을 모아서 비디오를 제작하고, 비디오 게임을 만들거나 제2탄, 제3탄의 시리즈로 연결시킨다. 거기에 더해 컨셉을 해외로 판매하거나 공동제작하여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한마디로 미디어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로프트 스토리>, 이미지와 리얼리즘에 대한 논쟁 불러

<현장고발 치터스>
<서바이버-올스타전>

네덜란드와 스페인, 독일에서의 성공을 확인한 〈CBS>는 2000년, 미국판 <빅 브러더>를 제작, 방영하여 미국을 리얼리티 쇼의 도가니로 몰아넣게 된다. “우리는 계단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일상의 이웃이 저명인사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는 존 데 몰의 말처럼 <빅 브러더>는 이후, 프랑스 민영 방송사인 M6에 의해 <로프트 스토리>(Loft Story)로 개작되어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다. 남프랑스의 휴양지, 생트로페에 특수 제작된 스튜디오를 세우고, 9명의 남녀를 뽑아 제작한 <로프트 스토리>는 프랑스에서 만든 최초의 리얼리티 쇼였고 M6는 심리학자까지 동원해 매일 그들을 분석하고 지켜보다가 급기야 ‘사고’를 치고 만다. 편집된 욕실장면이나 정사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필터없이 만인에 공개된 것이다. 게다가 참가자들이 워낙 개방적인 프랑스인인 탓에 반라로 돌아다니는 일도 허사였고, 고백의 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벌어지는 독백 역시 너무 솔직해서 <로프트 스토리>는 일명 스캔들 제조기가 되고 말았다.

프랑스의 십대들이 TV나 인터넷 앞에 붙어 꼼짝도 않는 증상과 주맹증(야맹증의 반대증상)을 일으키면서 ‘로프트 현상’이라는 용어가 발생하자, 사회적 찬반이 극명하게 갈렸고 논쟁의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는 국민들이라 시청자들의 논의도 격렬했지만, <로프트 스토리>가 방영되는 동안 이를 평하는 각계의 신중한 접근은 TV를 단순한 ‘바보상자’가 아닌 대중문화의 시발점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끌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격렬한 정사를 벌였으나 상대방의 냉대에 상처받고, 언론에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져 동정표를 한몸에 받았던 로아나는 결국 최후의 승자로서 음반까지 취입하고 각종 프로그램에 패널로 등장하는 등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밤을 낮으로 만드는 마약, 혹은 최면제로 불리는 <로프트 스토리>는 이후 프랑스 내에서 현대사회의 각종 증후군과 문화현상을 분석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10호 가까이 <로프트 스토리>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는 최근호(587호)에서 이 프로그램이 야기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한 평을 모아 총체적인 고찰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화의 사실성을 중시한 영화이론가 앙드레 바쟁이 창간했던 <카이에 뒤 시네마>기에 <로프트 스토리>가 야기한 영상 이미지의 본질과 리얼리즘의 한계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 이후 프랑스 리얼리티 쇼의 양상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이미 M6에서는 <로프트 스토리>의 두 번째 시즌을 끝냈고, 신부감을 고르는 프랑스판 <베첼러>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역시 지상파 민영 방송사인 TF1도 훈련과 심사, 시청자 투표에 의해 최후까지 남는 자가 스타가 되는 <스타 아카데미>, <서바이버>류의 <코란타>, 그리고 <로프트 스토리>와 유사한 시리즈인 <니스 피플> 등을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다. 국영 방송사인 France 2, 3에서도 이에 질세라 리얼리티 쇼의 요소를 병치한 체험 프로그램 <우린 다 경험했어요>와 증언 프로그램 <나의 선택>을 내보내고 있다.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 방영을 기다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새로 시작되는 그와 그녀의 사정

각 방송사의 편성 담당자들은 한곁같이 “2004년에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는 식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대부분 1%(케이블과 위성에서는 통상 시청률 1%가 넘으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가 웃도는 시청률을 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와 <서바이벌 천생연분> 등을 방영한 온미디어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가구기준 시청률로 환산하면 2∼3%, 케이블 자체 시청률 조사에서는 12∼13%를 보여 지난해 방송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온미디어는 지난해 인기 시리즈들의 새 시즌은 모두 방송할 예정이다. 한편 CJ미디어 XTM은 “2004년에는 XTM 채널 성격에 맞춰 극한·스피드·미스터리 컨셉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소개할 것”이라며 “스포츠 리얼리티 등으로 장르를 차차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본 패밀리>(The Osbournes) 캐치온 월∼목 밤 10시(4월1일부터)

2003년 미국 MTV에서 처음 소개돼 800만명의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들인 프로그램. 2002년 에미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지 오스본과 부인 샤론, 아들 잭과 딸 켈리가 출연하는 리얼리티 시트콤이다. 데뷔 이후 끊임없이 보여준 엽기적인 행각 때문에 ‘암흑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오지 오스본의 일상을 훔쳐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스본은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비아그라를 복용한다는 사실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오스본 패밀리>에 출연한 그의 자녀들도 스타 대열에 들어섰다. 아들 잭은 출연료와 광고로 약 500만달러(65억)를 벌어들였고, 딸 켈리는 가수로 데뷔, 부녀 합동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익스트림 트루>(Extream Truth) 스파이스TV 토 밤 10시30분, 월 오전 10시30분(3월20일부터)

최면술에 걸린 실제 연인들이 자신들의 내밀한 사적인 이야기를(물론 ‘성생활’ 위주로) 고백하는 새로운 형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임상 최면요법 치료사 톰 실버의 질문은 실로 날카롭고 선정적이지만, 출연자들의 대답(“그가 좀더 깊이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1회 출연자 로자니)도 만만치 않다. 최면 인터뷰가 진행되는 화면 뒤편에는 출연자가 최면상태에서 표출한 욕구가 실제로 재현되기도 한다. 스튜디오에 앉아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의 표정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이 시리즈의 재미.

<퀴어 아이>(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 캐치온 월∼목 밤 9시(4월14일부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패션 스타일리스트, 뷰티 전문가, 음식 감정가, 문화 분석가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5명의 게이들이 출연해 평범한 남성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준다. 미국 케이블 채널인 브라보TV에서 지난해 7월 방송했던 시리즈다. 이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유명한 화가지만 정작 자신을 꾸미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부치 S.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 부치 S.는 아무렇게 늘어진 긴 머리에, 물감으로 얼룩진 옷을 입고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집은 오래된 먼지와 세탁물, 아무렇게 늘어져 있는 그림들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는데. 과연 이들은 부치의 스타일을 세련되게 바꾸고, 첫 번째로 열리는 작품전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