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타이틀]
박창선의 애니산책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극장판>
2005-04-07
글 : 박창선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DVD가 국내에 발매되었지만, 아직까지 발매되지 못하고 팬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작품 중 하나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극장판 - 사랑, 기억하십니까>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어렸을 적에 자주 봤던 <마징가 Z> 같은 천하무적 슈퍼 로봇과는 거리가 먼, 사실적인 디자인과 용도를 보여준 리얼 로봇 계열의 대표작이다.

로봇이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이것을 전쟁을 위한 무기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작품 내에서 로봇 자체의 비중도 크지 않다. 반면에 획기적인 메카닉 디자인은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14 톰캣을 원형으로 한 ‘발키리’는 김청기 감독의 <스페이스 간담 V>가 그대로 표절해 국내에서는 ‘간담 V’로 알려지기도 했다(당시 <스페이스 간담 V>의 제작비를 대던 완구업체의 압력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마크로스>는 히카루, 민메이, 미사로 대표되는 3명의 남녀 주인공들이 전쟁 속에서 겪는 치열한 삶을 그리고 있다. 그들의 미래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지만 만남과 이별 그리고 사랑을 반복하며 한 사람의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드라마적 연출은 당시 사람들의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그 중 작품 속에서 아이돌 가수로 나오는 ‘린 민메이’의 경우, 그 인기가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사회적인 이슈를 일으킬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70년대 애니메이션 팬들의 선망의 대상이 <은하철도 999>의 메텔이었다면, 80년대 이후 최고의 캐릭터는 단연 민메이였다. 메텔은 아이돌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 민메이를 능가하는 캐릭터는 아직까지 없는 셈이다.

실제 민메이 역을 맡은 사람은 전문 성우가 아닌 가수였는데 팬들이 자신의 본명과 노래보다 민메이를 먼저 떠올리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조차 자신을 민메이라고 부르는 통에 더욱 좌절했다고 한다. 당시 <마크로스>의 인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는데, 국내의 마크로스 팬들 중 상당수가 과거 AFKN에서 방영됐던 미국판 마크로스 <출격! 로보텍>을 본 후 오리지널을 봤다고 하니 미국에서의 인기가 우리나라로 전달된 셈이다.

<마크로스> DVD는 일본에서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98년에 발매가 되었다. 전체적인 화질은 무난한 편으로 스케일 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박력을 느끼기에 알맞다. 애니메이터들의 혼이 담긴 섬세한 작화를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다. 다만 초창기 출시작인 관계로 기술적인 문제에 따른 화질 불균형은 감수해야 한다. 음질 면에선 민메이의 콘서트 장면 및 공중전 장면 등에서 안정감 있는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민메이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깨끗한 사운드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부록의 경우는 그다지 눈에 띌 만한 것이 없지만, 극장 개봉 당시엔 없었던 환상의 민메이 콘서트 엔딩 장면이 본편에 추가 편집되어 아쉬움을 잊게 해준다. 그 외, 극장용 티저 영상 2개와 두 종류의 예고편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작 <마크로스>의 발자취를 느끼게 해준다.

민메이가 되고 싶지 않았던 이지마 마리

이지마 마리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우들은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의 인기를 이용, 가수나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들의 콘서트를 보면 팬들이 열광하는 대상이 노래를 부르는 성우인지 아니면 그들이 연기했던 캐릭터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가수를 꿈꿨던 이지마 마리(飯島真理)의 경우는 불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사카모토 류이치의 프로듀스로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마크로스>의 대성공으로 인해 대중은 가상의 아이돌 민메이로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LA에서 음악활동을 했던 그녀는, 2002년에 발매된 마크로스 20주년 기념 앨범에 민메이로서 다시금 노래를 부르며 그간의 회한을 풀어놓는다. (DVD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