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1986년도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공의 여행자>와 함께 개봉할 예정으로 제작된 <미궁이야기>는 마유무라 타쿠 원작의 단편작품들을 옴니버스 형식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다. 결국 제작 일정을 맞출 수 없어 OVA로 출시가 되었으나 애초에 극장용으로 기획된 작품답게 퀄리티만큼은 확실하다.
이 작품은 1987년 도쿄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는데 영어권 국가에서는 <네오 도쿄>라는 제목으로 흘러 들어가 세 번째 에피소드의 감독인 ‘오토모 카츠히로’의 작품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어권의 자료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잘못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곳이 꽤 많다. 이 자리에서 확실히 밝히는데 <미궁이야기>는 <아키라>와 아무 관련이 없이 그저 오토모 카츠히로가 감독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작품일 뿐이다.
수록되어 있는 작품은 린타로 감독의 <라비린스 라비린토스>,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달리는 남자>,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공사중지명령> 이렇게 세 가지이다. 이중에서 <달리는 남자>는 오시이 마모루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그가 고사해 카와지리 감독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이들 세 작품은 각 15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비록 <미궁이야기>라는 메인타이틀 밑에 깔린 에피소드들이지만 각 감독들의 개성이 잘 살아나고 있는 보기 드문 명작이다.
<라비린스 라비린토스>는 초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달리는 남자>는 하드보일드 액션, <공사중지명령>는 확실한 블랙 코미디를 추구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사중지명령>은 원작이 오토모 카츠히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의 원작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워낙 그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온 에피소드라서 더욱 오해가 깊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원작인 <메모리즈>의 <최취병기>와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화질이나 음질은 리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세월의 흔적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다소 노이즈가 많다는 느낌도 있지만 필름의 특성이나 어두운 장면이 많다는 특징을 고려해본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어두운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준다. 린타로 감독이 직접 리마스터링 작업에 참여해 완성도에 박차를 가한 흔적이 보인다. 딱 한 가지 좌측으로 계속 필름라인이 흐른다는 것이 옥에 티.
음질은 돌비 디지털 스테레오 사양이다. 사운드의 사양에 의지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오리지널 사운드의 복원에 의미를 둬야 할 듯 하다. 음향보다는 영상에 감상 포인트를 맞추는 것이 좋으므로 멀티채널 음향이 아쉽지는 않다. 특별한 부가영상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간단한 감독 인터뷰라도 넣어줬으면 했는데 텍스트로 된 스탭 프로필을 빼면 12페이지 책자 밖에 부록이 없다. 거대 기업 가도카와에서 좀 더 성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