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호환, 마마, 전쟁 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불법 복제 비디오였다. 이 말은 우리가 대여점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렸을 때 영화 시작 전 불법 비디오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영상에서 불법 비디오의 대명사로 우리의 머리 속에 각인된 작품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크라잉 프리맨>이다. 제거 대상 앞에서 넘어지는 척하며 먼저 칼을 공중에 던진 다음 발가락으로 잡아 상대의 목을 그어버리는 장면은 불법 비디오가 안 좋긴 해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이 장면 하나로 <크라잉 프리맨>을 구해 본 사람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팬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로, 잔인한 장면을 부각시켜 불법 복제 비디오를 막으려다 오히려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은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크라잉 프리맨>이라는 제목은 평범한 도자기공이었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중국 최대의 암흑조직인 108용의 전문 킬러로 세뇌를 당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간단한 설정에서 나왔다. 잔혹한 킬러와 그가 흘리는 눈물.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이는 설정이다. 주인공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는 여자 주인공 역시 나중에는 칼을 들고 주인공 못지않은 맹활약을 보여주는 등 예사롭지 않은 길을 걷게 된다.
눈물을 흘리는 킬러
4천만이 다 아는 명장면이다
선이 굵고 화려한 전형적인 극화체 그림과 함께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격투신은 남성 취향 성인 만화의 극한을 보여준다. 화려한 그림체는 남자 주인공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용 문신에서 진가를 드러낸다. 온몸에 새겨진 용 문신 하면 <크라잉 프리맨>이 떠오를 정도로 유명하다. 참고로 여자 주인공은 호랑이 문신을 나중에 새기게 된다. 일본에서는 탄탄한 스토리 때문에 성인 만화의 대명사로 꼽히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폭력성과 선정성으로 인해 불법 비디오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불운한 작품이다. 95년에는 할리우드에서 실사영화로 리메이크 될 정도로 해외에서의 평가 또한 높다.
DVD는 이번에 처음으로 일본에서 발매가 되었는데 작품 자체가 1988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화질, 음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그 때 그 시절 몰래 숨어서 보던 비디오보다는 훨씬 좋다. 사운드 역시 당시의 둔탁하면서 촌스러운 효과음을 고스란히 잘 들려준다. 최신 작품들에 비하면 실망스러울지 모르겠으나 이런 것이 고전 작품을 보는 맛이다. 부록도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원작자인 ‘이케가미 료이치’의 원화집과 한 장의 포스터 갤러리가 전부이다. 그 중 원화집이 가장 볼만한데 원작자의 필력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부가 영상은 이렇게 빈약한 편이지만 초도물량에 한해 제공하는 탁상용 캘린더는 꽤 쓸만하다. 종이의 재질과 인쇄 상태가 대단히 좋아 책상 한쪽을 장식해두기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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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가미 료이치 원화집 중에서
영화로 더 유명한 <프리맨>
만화 <크라잉 프리맨>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총 3편이 있다. 왕조현, 임달화가 출연한 <자유인>(浪漫殺手自由人 1990)과 허관걸과 장만옥이 출연한 <루안살성>(紅場飛龍 1990),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크 다카스코스 주연의 <크라잉 프리맨>(1995)이 그것이다. 홍콩에서 두 편씩이나 연달아 만들어진 이유는 원작만화가 대단한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 한때 홍콩에서는 원작자 이케가미 료이치의 그림체를 흉내 낸 만화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도 했다.
루안살성 DVD
<미스터 부>와 <최가박당> 시리즈로 코믹배우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허관걸은 <루안살성>에서 원작에 비교적 근접한 발가락 액션을 보여주지만, 다들 알다시피 꽃미남이라는 설정과는 좀 거리가 멀다. 일본 만화의 팬이기도 한 크리스토퍼 갠즈가 감독한 <크라잉 프리맨>은 미남 액션 스타 마크 다카스코스의 카리스마에 힘입어 비교적 그럴싸한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웬만한 사람 머리 위를 훌쩍 뛰어다니고 주먹 한방으로 상대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프리맨의 초인적인 능력을 그려내진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DVDTop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