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은 보는 영화다. 부연하자면 잘 들여다봐야 하는 영화다. 인물들은 수어로, 표정으로, 마음으로 소통한다. 겉보기엔 연약해 보일지언정 단단한 잠재력과 내면을 지닌 청춘들에게서 발견되는 미세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으로 가득 채워진 영화가 <청설>이다. 스스로를 스토리텔러라 칭하는 강민우 촬영감독은 영화의 장면들을 현장에서 가장 먼저 지켜본 목격자이자 이를 카메라에 담아 스크린에 펼쳐놓은 전달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사마귀> 촬영차 평택에 와 있다. 원래 야외촬영을 할 예정이었는데 폭설 때문에 취소될 것 같다.
- <판소리 복서>(2019), <앵커>(2022), <킬링 로맨스>(2023)와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2022)를 촬영했다. 예전에는 직접 연출을 하기도 했는데, 본격적으로 촬영감독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
영화 동호회에서 영화 만드는 일을 처음 경험했다. 연출도 하고, 촬영도 하고, 또 스태프도 하는. (영화에 관계된 거라면) 뭐든 다 하는 동호회였다. 그때 영화와 관련된 이것저것을 두루 경험했는데 시나리오 쓰는 과정은 괴롭더라.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보다 촬영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고 조립해가는 과정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촬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촬영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 <청설>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것인가.제작사인 무비락에서 만든 <유열의 음악앨범>(2019)에 촬영 스태프로 참여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대표님이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관심이 있냐고 먼저 연락하셨다. 당시 <썸바디>를 찍고 있었다. 촬영에 6개월, 후반작업만 반년 정도 걸린 긴 프로젝트였는데, <청설>은 작은 이야기여서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좀더 세밀하게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편안한 상황에서 촬영한 첫 영화이기도 하다.
- 대만에서 만든 원작과 서사구조는 유사하지만 영화가 자아내는 정취는 다르다. 젊음의 에너지가 보다 섬세하고 촘촘하게 스며들어 있다. 어떻게 접근했나.
원작이 조금 더 만화적인, 혹은 귀여운 느낌에 가깝다면, 조선호 감독님이 나에게 보여준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드라마의 느낌이 더 두드러졌다. 감독님도 소통하는 방식이나 인간관계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다루고 싶어 하셨다. 만화적 요소가 사라지기도 했고. 그래서 나도 촬영할 때 원작을 의식하지 않고 임했다. 완전히 다르게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 그렇다면 <청설>을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뭔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인물을 담을 때 숏의 사이즈였다. 주인공들이 수어로 소통하다 보니, 프레임 안에 손이 들어오지 않으면 이야기 전달 방식과 부딪혔다. 개인적으로 클로즈업숏을 좋아하는데 수어를 하다보면 손이 아래에 있기도 하니까 얼굴을 가까이에서 잡기가 어려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영화에서 클로즈업은 손이 다 나오는 숏을 의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동시에 상업적 접근 방식의 측면에서 배우들의 얼굴도 잘 보여줬어야 했고. 그래서 적절한 숏의 사이즈를 찾는 것이 여타 영화와 다른 고민스러운 지점이었던 것 같다.
- 그런 점에서 현장이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지 않았을까 한다. 인물들이 수어라는 신체언어로 소통하는 영화이다 보니 집중도가 높았을 것 같다.
맞다. 배우들이 3개월간 수어를 집중적으로 배운 덕분에, 촬영 사이 짬에도 배우들끼리 수어로 소통이 가능한 정도였다. 그럴 때면 농담으로 “우리 험담하나?” 하기도 했다. (웃음) 일단 슛이 들어가면 대사와 말이 없는 상황이 시작되는 거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어떤 의미가 오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캐치하기 위해 엄청 집중한 기억이 난다. 귀를 쫑긋하는 느낌으로 그 순간을 잘 보려고 했다.
- 용준(홍경)이 선수들에게 무례하게 군 학부형을 쫓아가서, “우리가 듣는 사람이라면, 농인들은 보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용준의 단호한 성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청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쳐 지나가는 유한한 것을 잘 들여다보는 영화. 그만큼 카메라와 촬영은 이 영화에선 중요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렇다. 카메라 포지셔닝을 최대한 바꾸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인물들을 지켜봐주고, 우리가 수어를 읽지는 못하더라도 그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촬영하고자 했다. 그래서 배우 얼굴과 연기에 방해가 되는 느낌은 배제한 것이 사실이다. 지나치게 예쁘거나 키치한 공간에 가거나, 뭔가 눈에 강하게 들어와 배우들을 보는 방식을 방해하는 느낌은 피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앵글도 정직하게 찍으려고 했고, 망원으로 찍는 방식도 멀리했다. 특별한 몇컷을 제외하고는 35mm, 45mm, 55mm 3개 렌즈로 영화를 다 찍었다.
- 배우들의 클로즈업이 화면에 등장할 때, 지금 영화가 내게 보여주는 것은 ‘20대 청춘의 얼굴’이라고 느꼈다. 짧지만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여름의 풍경 같은 이미지였다.
개인적으로 클로즈업을 좋아한다. 질문에서 언급했듯이 얼굴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 같은 클로즈업을 무척 좋아하는데, <청설>에서는 대사가 손을 통해 전해지니까 원하는 만큼 많이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아껴둔다는 심정으로 참고 있다가, 후반부에 감정이 부딪치는 신이 등장할 때 클로즈업을 몰아서 써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배우들에게 들으니 손으로 수어를 하는 것은 맞지만 표정으로 이미 90%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달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찍힌 것 같다.
- 인상적인 한 장면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수영장에서 여름(노윤서)과 가을(김민주) 자매가 청각장애인에 대한 차별에서 비롯된 소동을 겪고 나서, 용준이 조용히 여름의 뒤로 다가와 거리를 둔 채 앉는다. 카메라는 둘의 뒷모습과 수영장 너머의 풍경을 담아낸다. 뭉클함을 자아내는 이 장면에서 말이란 때로 무용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아닌 미세한 움직임, 예컨대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들을 담는 것이 이 영화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걱정되지만 가까이 가서 앉지 못하고 뒤에서 바라보는 용준의 마음, 수영장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가을을 걱정하는 여름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리 배치부터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찍은 장면이다.
- 영화가 가진 독특한 질감이 있다. 이를테면 용준의 얼굴 위로 깃드는 햇빛이라든지, 수영장에서 배우들이 손으로 만들어내는 물결이라든지. 찰나의 순간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빛과 물의 움직임이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다.
그런 요소로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매우 좋아한다. 그 와중에 어려웠던 건 또 마냥 예쁘면 안된다는 점이었다. 가공되거나 과한 이미지가 아니면서 감정 표현에 도움을 줄 이미지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버스에서 세명이 수어로 소통하는 시퀀스를 좋아한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 소리 없이 서로 대화한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촬영 현장은 카오스에 가까웠지만. (웃음)
- 어떤 촬영감독이 되고 싶나.거창한 다짐은 없다. 다만 촬영감독도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그릇에 잘 담아내는 스토리텔러.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