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인터뷰] ‘우리가 눈으로 밤을 마주하듯’, <딸에 대하여> 김지룡 촬영감독
2024-12-06
글 : 최현수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카메라는 언제나 영화의 눈이었다. 인물을 바라보고, 세계를 조망하며, 정서를 포착하는 통로는 줄곧 시각의 영역이다. 하지만 어떤 카메라는 영화의 코가 되고 손이 되어, 향을 느끼고 열감을 전달한다.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는 유려한 빛만큼이나 인물들의 정서가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영화의 눈을 자처한 김지룡 촬영감독의 카메라에는 네 여성이 머물던 시공간의 온도와 질감이 담겨 있다.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의 눈이 무엇을 바라보았는지 묻는 질문에 김지룡 촬영감독은 풍경마다 깃든 어떤 냄새를 감지했다고 답했다. 창틈으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볕에도 향이 있다고 말하던 김지룡 촬영감독이 이미지를 감각하는 법이 실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촬영감독의 길로 들어선 배경은.

어릴 적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미대 진학을 희망했다. 부모님과 적당히 타협해 공업디자인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 만에 자퇴했다. 이후에는 영상디자인과로 진학했다. 당시 교수님들이 광고계 종사자셔서 처음엔 광고 프로덕션에서 일했다. 현장의 리듬이 워낙 빨라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카메라를 잡는 일은 좋았다. 카메라를 제대로 다루고자 영화 촬영팀에 지원했다. 영화 현장이 잘 맞았는지 당시 촬영감독님께서 촬영을 전공해 촬영감독에 도전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촬영을 공부하면서 촬영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 촬영감독은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요소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풍경을 떠올린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공간에는 이미 조명, 색, 톤 등 시각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스태프와 연출자에게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주로 활용한다. 다른 매체에는 서사와 맥락에 따라 전달하려는 이미지가 곡해될 수 있다. 공간 위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탓에 최근 <엄마의 왕국> GV에 참여했을 때 깜짝 놀란 일도 있었다. “인상적인 에너지를 지닌 배우의 연기를 어떻게 찍으려 했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웃음)

- 그래서인지 <딸에 대하여>에는 엄마(오민애)의 집과 일을 하는 요양원의 온도감 차이가 두드러진다.

요양원에 들어서면 고독하고 외로운 냄새가 묻어난다. 게다가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취침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형광등을 켜고 있다. 이런 질감을 살리려 차가운 빛을 사용했다. 제희(허진)가 옮겨간 낙후된 요양원은 그늘진 텁텁함이 있다. 이를 표현하려 최소한의 빛만 활용했다. 엄마의 집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혼자 살지만 결코 집이 너저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잘 정돈된 공간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공존한다. 따라서 집을 건조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렸다. 레퍼런스로는 일본 교외의 고택 사진을 참고했다. 삭막한 아파트보다는 빛이 다양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내부로 들어오는 자연광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촬영했다.

- <딸에 대하여> 전반에 흐르는 엄마의 깊은 고독감이란 정서를 이미지로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듯하다.

영화도 보고 그림도 찾아봤지만 제일 기억에 남았던 이미지는 잠시 할아버지와 함께 산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대학원 재학 당시 친척의 권유로 혼자 계시는 할아버지와 동거했었다. 살가운 분이 아니셨기에 항상 외로워 보이셨다. 특히 문틈 사이로 소파에 홀로 앉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그 감정을 기준점으로 삼고 문틈 사이로 홀로 남겨진 인물의 이미지를 찾기 시작했다. <딸에 대하여>와 대척점에 놓인 영화지만 <다키스트 아워>가 윈스턴 처칠을 그런 프레임으로 바라보더라. 반대를 무릅쓰는 인물의 고립된 프레임을 바라보며 이런 정서를 적극적으로 써보자는 용기를 얻었다.

- 어둠 속에서 엄마가 잠든 제희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유달리 아름답다. 어둠을 활용해 미려한 정서가 구축된 순간이다.

원작 소설을 보면서도 크게 와닿았던 대목이다. 통상 우리가 속마음을 넋두리하듯 털어놓는 시간은 어두울 때다. 어린 시절 친구와 잠들기 직전에 나누는 대화나, 깊은 밤의 술자리들이 그렇다. 그런 기억에 기반해 조명감독님과 빛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했다. 보통 심야의 실내 장면은 푸르스름한 월광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엄마와 제희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인위적이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가 눈으로 밤을 마주하면, 어둠 속에서 바깥의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 <첫 번째 아이>의 신축 아파트, <너를 줍다>의 복도식아파트, <엄마의 왕국>과 <딸에 대하여>의 구축 빌라까지. 그간 촬영한 장편들의 주무대가 모두 거주 공간이다.

이런 우연이 있나. 나조차도 놀랍다. 집이라는 공간은 인물의 역사이자 영화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실제로 네채의 집은 구조적으로도 전부 다른 공간이었다. <너를 줍다>의 촬영 공간은 20평 남짓한 아파트였다. <엄마의 왕국>의 지하실 계단 장면은 그보다 더 좁아서 배우와 단둘이 들어가 촬영할 수 있었다.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내가 그린 이미지의 1.5배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지만 여건이 안될 때는 개인적으로 휴대하는 작은 트라이팟을 활용해 최소한의 장비로 촬영한다. 의외로 재밌다. 마치 사진을 찍듯 좁은 공간을 최대한 넓게 찍는다.

-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이미지의 시적 서사’라는 주제로 토크 포럼에 나선다. CGK 촬영상 수상 당시 코멘트도 ‘이미지가 언어라면 정갈한 언어로 이야기와 연기를 따뜻하게 구현해냈다’였다.

이미지가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상업 콘텐츠는 이미지의 모든 요소가 디자인의 무결성을 위해 복무한다. 하지만 영화 이미지는 언제나 정서를 함유해야 한다. 정보량이 많은 그림보다는 정보량이 다소 부족해도 시나리오에 드러난 정서의 포인트가 중요하다.

- 그렇다면 좋은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인가.

영화를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좋은 영화는 무언가 냄새가 느껴져야 한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좋은 이미지는 체험이 된다. 예를 들어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 맹렬한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기분이다. <애프터썬>은 교외에서 느낄 수 있는 햇빛의 냄새를 머금고 있다. 좋은 이미지는 영화의 세계관을 다른 감각으로 전달한다.

- 2017년 <모놀로그>, 2024년 <선의 기억> 등 총 두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모놀로그>는 신혼 초에 아내와 겪은 소동에서 시작했다. 항상 아내와 산책에 나서면 사진기를 메고 다닌다. 내가 사진을 찍느라 멈추면 아내는 혼자 저 멀리 가더라. 그것 때문에 신혼 초에는 많이 다퉜다. (웃음) 이런 소재와 질감의 이미지를 찍고 싶은데 딱히 제의받은 영화가 없어서 연출에 도전했다. 지난해에 찍은 <선의 기억>도 한국적인 오브젝트만의 미학에 끌려 있던 상태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N개의 서울>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연출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사람이기보다는 이미지에 매료되는 사람이다. 촬영감독으로서 좋은 이야기의 질감을 구현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다.

- 앞으로 담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면.

다시 집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마주한다면, 등장인물이 한옥에서 사는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 요새 한옥의 조형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전쟁영화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처음 영화에 매료되었던 계기는 중학생 때 보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역사의 일부를 재현하는 이미지를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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