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을 본 관객 누구나 품는 질문은 ‘이걸 어떻게 찍었을까?’일 것이다. 인파가 붐비는 낮의 종로 일대, 남자(하성국)와 여자(이명하)의 긴 산책을 찍은 1부 ‘달팽이’, 야밤의 광화문 근처를 걷는 남녀가 등장하는 2부 ‘서울극장’, 좁은 차 내부와 술집 그리고 다시 광화문 인근의 모습을 담은 3부 ‘소우’까지 일전의 독립영화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서울의 이미지와 아스라한 질감이 <미망>을 채우기 때문이다. 이는 김진형 촬영감독의 역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국대학교에서 학부를 이수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에서 촬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몇편의 경력을 쌓았다. 사수였던 이진근 촬영감독님을 따라다니다가 <아워 미드나잇> <말아>와 같이 소수의 크루로 함께한 작품을 맡게 됐었고, <미망> 역시 동문인 김태양 감독님과 자연스럽게 협업하는 분위기로 진행하게 됐다. 정말 적은 예산이었는데 평소에 친했던 건국대학교 동료들이 함께해줬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 <미망>은 실제 촬영 기간의 시차가 있는 3부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 파트에서 사용한 카메라도 변화를 겪었나.
첫 시작이었던 단편 <달팽이> 때는 당시 렌트할 수 있던 기종 중에 가장 저렴했던 레드 레이븐과 범용성이 좋은 삼양 렌즈를 사용했다. 이후 3년쯤 지나서 김태양 감독님이 2부와 3부의 시나리오를 함께 주셨다. 이때는 내가 개인 사업 중인 촬영 프로덕션을 통한 광고나 뮤직비디오 촬영 등으로 사놓은 장비들이 있었다. 소니 FX6를 사용했고 마찬가지로 삼양 렌즈를 썼기에 <미망> 전반의 렌즈 톤은 비슷하다. 시간이 지났어도 같은 공간을 비슷하게 걷는 두 남녀의 상황에 집중해야 했기에 각 파트의 룩을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 김태양 감독은 필름 영화의 질감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였나.
<미망>의 무대가 된 공간에 대해 김태양 감독님이 지닌 생각과 감정을 우선하다 보니 나온 방향성이었다. 감독님이 직접 찍은 화면의 레퍼런스나 공간의 이미지를 필름 사진으로 많이 보여줬고, <미망>의 질감도 이에 따라야 한다고 판단했다. 필름의 질감도 질감이지만 결국엔 그 공간에 집어넣고자 하는 감성이 필름에 가까웠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다.
- 특히 2부의 밤 산책 장면에서 필름 영화의 감성이 짙게 느껴진다.
통제가 어려운 야외 로케이션이었고 밤 시간대였기에 인공조명 없이 카메라의 조리개를 최대 개방하고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면 색수차나 질감이 디지털카메라의 쨍한 느낌보단 블러가 낀 것 같은 화면이 나오게 된다. 주어진 상황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었다.
- 조리개를 최대 개방했다면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결과물에선 티가 나지 않는다.
맞다. 사실 일반적으로 촬영 현장에서 택하는 방식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항상 같이하는 크루가 있었기에 믿고 진행할 수 있었고, 짐벌로 따라가는 구간도 잘 마칠 수 있었다. 2부 ‘서울극장’에서 남녀가 정면으로 걷는 장면은 모든 크루가 뒷걸음질치면서 합을 맞췄던 기억이 있다.
- 최소한의 촬영용 조명도 없던 건가.이동식 조명이 하나 있긴 했는데 사실상 많이 반영되진 않았다. 영화를 찍다 보면 그런 보조광이 너무 가짜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원래 세상에, 이 공간에 없는 빛의 광질이 거짓말처럼 보이는 것 같다. 만약 상업영화라면 조명의 설계가 다 완벽하게 되어 있어야겠지만 이번 작품에선 그것보단 감독이 이 공간에서 느낀 빛의 정서를 그대로 전하는 게 중요했기에 최소한의 조명만 사용했다. 평소에도 인공조명은 최소화하는 편이다. 그래서 부족한 노출 때문에 후회할 때도 많긴 하지만. (웃음)
- <아워 미드나잇> 때도 가장 짙은 암부를 표현하는 일에 중점을 뒀다고.
사실 그것도 촬영감독이 하기에 위험한 일이긴 하다. (웃음) 보이는 게 거의 없으니까. 그런데 영화의 장면을 좋게 만들려면 뭔가를 덧대기보단 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여러 조명이 켜져 있고 빛이 다양해도 그게 정제돼 보이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것보단 원래 있는 어둠을 활용하거나 오히려 더 어둡게 해서 콘트라스트를 만드는 쪽이 좋아 보인다.
- 2부에선 남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숏의 사이즈도 타이트해진다는 느낌이 있다. 숏 사이즈를 고른 기준도 궁금하다.
카메라와 인물 사이의 거리감에 중점을 뒀다. <미망>을 찍으면서는 대부분 표준렌즈에 가까운 35mm 렌즈를 썼다. 그래서 숏 사이즈도 실제 카메라와 피사체의 거리감에 따라 달라졌다. 어느 순간에 카메라가 이들에게 더 붙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이를테면 2부에서 남녀가 서로 아이에 대해 거짓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을 카피하다>처럼 둘이 가짜 같은 대화를 나눌 때 카메라가 가깝게 팔로잉한다면 어떨지 싶었다. 결과적으론 복합적으로 적절한 감정이 구현된 것 같다.
- 거리감의 문제에서, 3부 ‘소우’의 자동차 신도 인상적이다. 카메라가 차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창밖에 있기에 차창에 비치는 사물들의 움직임이 강조되고 감정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카메라가 지금 이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감정을 어디에서 찍어야 하는가,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둬야 하는지가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랬을 때 카메라가 차 내부로 들어가는 건 지나치게 가깝다고 느껴졌다. 또 현실적으로는 매직아워에 맞춰 카메라 3대를 동시에 사용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기에 차 바깥으로 카메라를 빼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 3부에서 술집 ‘소우’ 내부의 협소한 공간은 어떻게 촬영했나.
다른 촬영본과 같은 35mm 화각을 유지하되 왜곡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칼 차이스 계열의 렌즈를 하나 사서 사용했다. 광각을 사용하면 인물과의 거리감이 지나치게 가까워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정말 그 좁은 공간에서 벽의 끝의 끝까지 카메라를 설치해서 찍었다.
- 1부에서 여자가 카메라의 코앞까지 다가오는 장면이 몇 차례 있다. 이런 숏 역시 거리감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첫째론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예측보다 대사가 길어지면서 카메라를 지나치고 대화가 이어지는 컷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배웠던 말인데, 촬영에 어떠한 법칙도 없지만 굳이 하나를 말해야 한다면 그건 화면 안에서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의 위계를 확실히 나눠야 한단 점이다. 그 위계를 만드는 건 초점일 수도, 콘트라스트일 수도 있다. 질문에서 언급한 장면에서 위계질서상 중요했던 것은 인물 자체와 인물의 감정이었다. 촬영의 측면에서 남들이 보면 카메라 오퍼레이팅을 잘 못했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그때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고 몇번 다시 찍어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 촬영뿐 아니라 연출을 겸하고 있기에 생기는 가치관 같기도 하다.
그렇다. 사실 촬영감독으로서는 카메라가 엔지인데 그대로 가자는 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다. (웃음) 그럼에도 원래 연출 감독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돈을 버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은 조금 분리해서 생각하려 한다. 지금처럼 운영하는 회사에선 광고나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고 다른 영화와 좋은 연을 맺기도 하겠지만, 이 돈을 벌어서 정말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